어떤 약속
냇물이 바다이루고 달은 강물에 떨어지며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데 있어서 믿음보다 더 값진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정법회상을 만나 정사에게 훈도를 받고 생활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 주변에는 그릇된 신념 때문에 가정과 사회 국가에 큰 무리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마저도 끊게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잇다. 사농공상으로 대별되는 가운데 각기 분화된 삶의 형태가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생활속에서 오로지 진리를 연마하고 궁구하는 일관된 생애는 수십억 인류중에 그리 흔치 않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상속에서 즐기는 것만을 생의 최고 가치로 알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몸부림 친다. 일신의 영화와 이기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도 많다. 때때로 내 잘못이나 남의 잘못을 발견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남의 행동을 보고 어디가 잘못 되었나 금방 알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우주의 무궁한 진리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진리는 우리에게 깊은 희열과 마음의 평화를 심어주지만 진리를 발견하기까지의 고난을 택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수많은 나라중에 대한민국에서 태어 나게된 것, 그리고 나의 부모님을 인연하게 된 것, 더욱 대종사님 같은 성현을 당대에 뵙고 지도를 받게된 점, 마지막으로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구도자로서 전무출신을 선택하게 된 나 자신은 영생의 복을 받은 것이 분명한 일이다.
나는 1914년(원기전 2년) 갑인 3월 16일 태어났다. 전북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서 부친 김휴태와 모친 안경신의 장남이 되었다.
나의 고향 좌포는 산골이다. 주민들 거의가 농사를 짓고 순박하게 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긍지만은 대단했다. 마을 양편으로 둘러선 봉황산과 난산에는 기암괴석이 있고 봄에는 꽃동산 가을이면 단풍으로 한폭의 꽃병풍을 연상하게 한다.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은 줄기차게 계절의 변화에 아랑곳 없이 유유히 맑기만 하다. 그리고 수백 斗落의 비옥한 전답이 후한 인심을 말해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봉황산에서는 봉황이 살았다고 하며 아미산은 봉황이 알을 품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산은 진안 팔경에 드러난 산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도통리에는 풍혈냉천의 유명한 약수가 있어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든다.
이처럼 산세가 좋고 인심도 좋은 산골 농촌에서 자라게 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낳았다는 나는 부모님을 비롯, 조부모님들까지 지극한 정성에 의해 출생하였다.
나의 부모님은 일찍이 결혼하셨다. 아버님이 15세 어머님이 17세때 혼인을 하셨는데 어머님이 스물다섯이 되도록 일점 혈육을 얻지 못해 초조해 하셨다. 그래서 나의 조모님(노덕송옥)과 어머님은 자식을 얻으려고 기원을 올리셨다.
한달에 세 번씩 3 ㆍ 7일을 정해 놓고 천지신명에게 일심으로 빌었다. 뒷산에 올라가 조그만 옹달샘을 품어 맑은 물이 고이면 과일과 떡을 해가지고 가서 기도를 올리셨다. 때로는 마을앞에 흐르는 냇물가로 나가서 용암산제도 올렸고 또는 산제당에 가서 기원을 하며 정성을 다하셨다.
나의 어머님은 무남독녀이셨으므로 외할머니와 함께 가까이에서 살게 되셨다. 그래서 이 자식을 두게 해달라는 기원도 양가 조모님께서 같이 올리셨으며 하늘에 사무치는 정성을 올리셨던 것이다.
원래 우리 집안은 대대로 적선하시기를 퍽 좋아하셨다고 한다. 남부러움 없이 가세가 넉넉해서도 그렇겠지만 어쩌면 불가와 인연이 지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조모님은 스님이 오시기만 하면 아끼지 않고 시주를 했고 스님이 짊어지고 온 바랑에 가득 채워 주셨다.
나의 조부님은 언제부터인가 「남ㄴ화경」을 새벽마다 외우고 계셨다. 남화경은 중국 전국시대의 장자가 지은 것으로 장자의 저서인 「장자」를 달리 일컫는 이름이다. 조부님께서 왜 이 남화경을 읽으셨는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경을 읽으며 마음을 맑히고 스스로 수신하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무튼 나의 양가 조모님들의 「큰 손자 낳게 해 달라」는 기원과 전 가족의 염원은 4~5년 계속되었고 드디어 나의 어머님 스물일곱 되시던 신해년에 첫딸을 낳게 되셨다. 그러니까 나의 누님을 낳으시고 2년 뒤에 나를 낳으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를 갖게 되면 태몽을 갖는다고 한다. 나의 어머님께서도 꿈을 꾸셨다. 마을 뒤에 있는 아미산이 거꾸로 보였고 앞에 흐르는 냇물이 돌연히 큰 바다를 이루었다. 그리고 중천에 떠 있는 둥근달이 강물에 떨어져 집안에 광명이 가득하므로 나의 어머님은 그 순간 찬란한 빛을 흠뻑 마시고 그 달을 품안에 안고 싶어서 치마로 세 번이나 안으셨다고 한다.
이런 꿈을 꾸신후로 부정한 장소에는 가지 않으셨고 냉수를 마시면 해가 있다하여 삼복더위에도 마시지 않으셨단다.
오늘에 생각해 보니 이런 모든 일들이 나의 출생을 위한 어른들의 지극한 정성이었고 그래서 그 은덕으로 나의 생애는 구도의 길로 나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 대종사님을 친견하게 된 것부터가 어떤 약속이 아닐 수 없었으며 그때부터 신앙하고 수행하는 수도자의 길로 안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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