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사적 전체생명에 참여

이제 내일 모레면 4월 28일 제72회 대각개교절을 맞는다. 4월달도 어느듯 하순에 접어들고 있는 요즈음의 봄철인데도 봄을 마주대하기가 무척이나 스산하고 어설프다. 만산과 만야에는 벌써 개나리 진달래 벚꽃과 목련이 바야흐로 무르녹아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아직 봄의 자태는 사뭇 눈부시어 눈을 들어 볼 수도 없고 매섭고 그 고고한 기운이 섬찟하고 싸늘하여 손을 들어 만져 볼만큼 정이 가는 것도 아니다.
늦은 봄을 가고 있는 4월 한달의 밤과 아침 낮의 기온차가 자못 영하와 영상을 맴돌며 약 20도의 심한 차이로 봄철을 영위하는 이 무위이화의 자연속에서 지금으로부터 72년을 거슬러 올라가 병진년 영광 고을 노루목의 그 새벽 봄기운과 봄소식을 헤아려 보는것도 부질없는 상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이미 대 우주생명의 용광로 속으로 자기 자신을 온통 내던져 버린 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닌 만유의 생사를 넘어서버린 저 엄청난 대정속에서 대각에 이르기까지의 그 어둠으로 이어진 온갖 고행의 과정이 무려 20유여년이었으니, 당시 26세의 대각자인 청년 대종사가 맞이하신 그 대각의 봄은 과연 어떤 봄이었을까.
이 하늘과 이 땅은 말할것도 없고 한떨기 피는꽃 한줄기 바람에도 한줌의 흙과 한 그루의 풀포기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사물 그 어느 티끌 하나도 함부로 되는것이 없고 저마다 다같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이 은혜와 상생으로 만개한 한없는 기쁨이며 보람이 그 대각의 봄으로 현현된 두렷한 실상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이 근원적으로 은혜와 상생으로 이미 뿌리내려진, 우리 소태산 대종사께서 다시 일으켜 세운 전우주적 대각의 봄도 진정 그 누구와 더불어 그 기쁨을 재창조하고 그 보람을 보람으로써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시절은 아니었다. 도리어 상극과 전쟁과 분열과 멸망의 역사가 집단적으로 인위적으로 극대화 되어가는 암흑과 질곡의 식민지 제국주의가 횡행하는 시대, 아직도 대각의 이 봄을 시새움하는 살과 뼈를 에는 설한풍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좁은 겨울을 지내는 위축된 습관으로 활달하게 나서질 못한것 뿐이지 지금이 어느 때라고 어찌하여 겨울의 연장으로만 머물러 있을수가 있는가.
대종사께서 大顯彰하신 대각과 대각의 봄은 개인과 교단의 차원에서만 그 뜻고 기쁨을 간직하는 것으로 족하고 다인 것은 아니다. 개교의 표어가 말하고 있듯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정신개벽의 주체가 대각이라면 대각의 생명과 그 전체는 개벽이다. 대종사께서 체득하신 대각은 개벽과 더불어 일체양면으로 존재하고 활현하는 새시대 우주적 주체정신의 생명이다.
대각과 개벽의 정신생명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아직은 극히 작은 규모이지만 교단에서는 근래에 이르러 대각개교절 기념사업을 서서히 펴나가고 있다. 말하자면 지극히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근원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분수에 맍는 우리들의 일을 찾아서 끊임없이 그것을 기쁨으로 재생시키고 보람으로 이어간다는 신선한 자각적 자동적 헌신과 봉공의 생활자세를 구체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작업으로서 그늘진 곳 취약지역의 의료봉공 사업, 불우이웃돕기, 노인과 어린이 보호, 자연보호등 이렇듯 우리들은 사소한 일의 중심에서부터 대각과 개벽의 의미를 깨닫고 점진적으로 우주사적인 전체생명에 참여하여 드디어 하나가 되는 은혜와 상생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되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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