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 성상 교단경제 기초확립에 큰 공헌

원로 수위단원인 성산 성정철 법사(85)가 지난 26일 새벽 2시 50분 중앙총부에서 숙환으로 열반했다. 법랍 60년.
故 성산 종사의 법위는 정식출가위, 사업성적은 정특등으로 원성적 정특등에 해당되어 중앙총부 소관회의에서는 성산 종사의 장례절차를 교회전체장으로 시행키로 결의하고 장의위원회(위원장 김윤중)를 구성, 지난 29일 오후 1시 30분 중앙총부 기념관에서 발인식을 거행했다. 장지는 왕궁 영모묘원.
이날 발인식은 김윤중 장의위원장의 개식사, 장응철 총무부장의 약력보고, 고사 독경 및 축원문, 설법등으로 거행됐다.
대산 종법사는 설법(황직평 법무실장 대독)을 통해 『오늘의 교단이 이루어진 것은 회상에 바친 혈심혈성과 위법망구 위공망사의 결과라 생각할 때 성산 은법 형님의 거룩한 성자혼이 산역사로서 교단 구석구석에 나타나 있음이 새삼 뜻있게 보여진다』고 밝히고 「蒼海萬里虛 無我無人天 岩上一花身 眼中十方現」이라는 법구로써 영생을 약속했다.
설법에 앞서 고사는 전무출신 대표로 안이정 법사(중앙훈련원장)가, 재가교도 대표로는 정도진 법사(중앙교의회 의장)가 낭독했고 유족대표로는 외동딸인 성보영씨(유기현 법사 정토회원)가 고사를 낭독했다.
이날 발인식은 끝으로 성산 종사의 생전 육성 녹음 법문을 듣고 김제북고 밴드(30명)의 연주에 맞춰 조가를 부르고 폐식했다.
한편 장의행렬이 10여대의 차량에 편승하여 오후 3시 20분 영모묘원에 도착 박진흥 중앙총부 예감의 주례로 입장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대산 종법사는 『사람이 세상에 나오면 도장을 찍는데 성산 종사는 마음에 도장을 찍어 온통 바친 신성으로 스승과 동지와 제자를 만났기에 출가위에 오를수 있었다』고 법문하고 『그로인해 대종사님 이하 선진님들과 더불어 법보에 길이 빛날 것』이라 하면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기렸다.
이에 앞서 황정신행 법사와 김근수 법사의 당부 말씀이 있었다.
한편 대산 종법사는 27일 오즌 11시 빈소에서 『신의가 없는 사람은 살았어도 죽은 사람인데 성산 종사는 참으로 信義貫古今하셨고 스승님의 경륜을 바르게 이어 徑輪通宇宙하신 분이었다』고 고인을 회고하고 『평생을 통해 위법망구 위공망사를 몸소 실천한 법호 그대로 정성스러운 분이었는데 중요한 시기에 열반함에 슬프기 그지없다』고 법문했다.
성산 성정철 종사는 1902년 11월 21일 경남 창령군 유어면 부곡리에서 출생하여 원기 10년에 입교하고 同 13년에 촐가, 전무출신의 길을 걸으면서 중앙총부 서무부장 산업부장 재무부장등 교단 중요사업계의 요직을 두루 맡아왔다.
원기 44년에는 수위단원에 피선되고 同50년에는 학교법인 원광학원 초대이사장을 역임했으며 同65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했다.
성산 종사는 평소 말이 적은 가운데서도 크고 작은 교단일을 정성스런 마음과 몸으로 실행해오다가 수년전부터 지병인 당뇨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중앙총부 원로원에서 투병생활, 그 중에도 신앙과 수행에 정진해오다 지난 26일 새벽 2시 50분 85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성산 종사 약력
△1902년 11월 21일 경남 창령군 유어면 부곡리에서 출생 △원기 10년 6월 21일 입교 △同13년 출가, 중앙총부 농공부원 근무 △同15년 신흥 농업부원 △同17년 중앙총부 농업부원 △同18년 영산 감원, 공급 ㆍ 서무부장 △同31년 수계농원 과원주무 △同32년 영산지부장 △同34년 중앙총부 서무 ㆍ 산업부장 △同38년 이리보화당 부이사 △同39년 「誠山」법호수증 △同40년 중앙총부 서무 ㆍ 재무 ㆍ 사업부장 △同46년 중앙총부 재무부장겸 중앙수양원장 △同47년 재단법인 원불교 이사장 △同50년 학교법인 원광학원 초대이사장 △同52년 학교법인 원광학원 이사 △同53년 영산출장소장 △동56년 중앙수양원장 △同62년 수위단원 원로단원 피임 △同63년 교령추대 △同65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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