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발전위원회」에 바란다

인연을 폭넓게 수용하여 각자 재질 따라 역할 분담하는 인재양성
필요, 예비과정 설치로 출가정신 다지고 결단의 기회 부여해야.
 법을 구하러 황매산에 이른 혜능에게 홍인 대사는 「네가 영남의 오랑캐인데 어찌 부처를 이루겠느냐?」하고 일 봉을 가한다. 이에 그는 「사람은 비록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하고 받았다.
 요즈음 전무출신 지원자 심사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은 하면서도 혹시 형식에 얽매어 법기를 놓치는 일은 없을는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황매산의 이 문답을 되새겨 본다.
 교칙을 어긴 동지를 추방하려는 대중을 크게 꾸짖으셨다는 실시품 6장의 가르침을 생각해보면 전무출신을 지원하겠다는 마음을 북돋우며 키워 줄지언정 서원을 꺾거나 인연을 막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곳곳에서 교역자의 자질문제가 제기되고 교화침체의 주된 원인으로까지 지적되는 실정이고 보면 그 선발과 교육, 그리고 관리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대종사께서도 「전무출신을 하기로 한 사람이 그 본분에 어긋지고 보면 세상사람의 몇 배   과보가 있으니 차라리 사가로 돌아가 당초에 원하지 않던 죄업이 쌓이지 않도록 하라(교단품 7장)」고 엄히 경계하셨다.
 모든 인연을 소중히 수용하면서 각기 이름 값에 충실할 수 있는 인재양성의 길을 마련하는 것이 교단 제일의 과제요, 절실한 요청이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발족된 교육발전위원회에 기대를 하면서 몇 가지 소견을 피력해본다.
 인연을 널리 수용하려면 근무형태를 다양화해서 일터를 넓혀가야 한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전무출신규정이 이러한 의지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보완 시행이 빠를 수록 좋겠다.
 현행의 봉공직은 교화직에 안 맞는 사람이 택하는 차선책으로 인식되어 잇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각기 능력과 특성에 맞는 선택을 하기가 어렵고 권장도 주저하게 된다. 일에 구분은 있을지라도 대우가 공정하고 보람을 公有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다음은 예비과정의 신설문제다. 그간 전무출신을 지원하고 교당이나 기관에서 예비근무를 하는 동안 잡철을 털어 버리고 약점도 보완하야 그 진로를 걱정하는 과정을 겪어 왔다. 그러나 점차 근무를 하지 않고 입학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근무과정에서도 젖처럼 책임 있는 지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실정이다. 전무출신을 전제하고 근무를 마친 경우 선발과정에서 부적한 판단이 될 때도 엄정한 조처를 내리는데 많은 장해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의 자격심사과정의 기초가 되는 여러 가지 검사자료는 그간의 경험을 보아 타당성이 인정되기는 하나 기간에 판단을 내리는데는 무리가 따르게된다. 시험 상으로는 어떤 반응이 나타나더라도 차후 본인의 의지나 환경에 따른 변화도 있고 새로운 가능성이 확인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현행방법을 통해 여러 직종의 지원자를 선발한 뒤 일정기간의 예비과정을 통해서 좀더 검증하고 각자에게도 결심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전무출신의 길이란 대학의 전공선택 하듯 적성검사의 결과에 의지할 수는 없다. 비장한 각오로 선택하는 생의 유일한 길이요,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결단이어야 한다.
유성 출가하는 부처님처럼 재생명리의 세속적 욕망을 헌신처럼 버리는 결연한 의지로 출발하여야 되고 이러한 출가정신으로 초발심을 불살라 법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사회에서 찌들 린 때를 벗기고 생활 태도를 전환시키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자기 시험을 거쳐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기회가 부여되어야 하고 지도하는 측에서도 객관적 자료의 검증과 확인의 기회가 될 뿐이니라. 폭넓은 2년의 이러한 예비과정을 거쳐 선택되고 단련된다면 교화 현장에서의 부적응도 줄어지고 퇴속하는  입장에서도 새 출발의 부담이 적어질 것이다. 더 주문을 한다면 예과 과정의 설치 장소는 영산 성지가 되었으면 한다. 대종사님의 숨결과 구인선진의 혈성을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되도록 단순화하여 외국어 한문 등 기초어학을 익히는데 중점을 두고 창립정신을 본받는 과정이었으면 한다.
 끝으로 기우이길 바라는 주문을 한다면 영산과 익산의 양 기관을 통해 배출되는 교역자의친화문제이다. 이전에도 선학원간의 친목문제에 조심스럽게 마음을 써 왔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학연에 따른 친 불 친이 때로는 갈등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해 가끔씩 비치는 조계종의 문중파벌이 남의 일 같지 안게 들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교무․영산 출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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