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본 문목 1조는 이를 환기하는 가르침이다. 약육강식과 물질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살상되는 현상에 대하여 (본 문목 제1조는) 생명경외의 정신을 넣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극악한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남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죄일 것이다. 어떠한 죄목이라 해도 살생의 죄목보다 큰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살생이 극악무도한 죄라는 것은 상극의 고통스런 윤회의 속박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옛날에 '살인자는 사야(死也)'라 하여 남의 생명을 상하면 자기 생명도 내주어야 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으며, 회교에서는 지금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오역죄(五逆罪)를 거론한다. 〈잡아함경〉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죄, 어머니를 죽인 죄, 성자를 죽인 죄, 교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죄, 부처의 몸에 상처를 내는 죄를 오역죄라 하였다. 석가는 기원정사에서 제자들에게 "지옥에 떨어지는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가"를 물었으며, 여기에서 오역죄가 거론되고 있다.

요가 수행자들도 지켜야 할 오계(五戒)가 있는데, 그것은 불살생(不殺生), 불망어(不妄語),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탐(不貪)이다. 이 오계 중에서 제1규칙이 불살생계이다. 기독교 십계명의 제6조를 보면 "살인하지 말지니라. 다른 사람을 죽일 계략을 도모하지 말라"(마태복음5:21-26)고 하였다. 이처럼 불살생 계율은 모든 종교의 핵심 계율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문제점이 등장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전혀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우리가 육식을 하는 한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이에 신라의 원광법사는 세속오계로서 살생유택(殺生有擇)을 말하였다. 즉 육재일(六齋日)과 춘하월(春夏月)에는 살생하지 말라 했으니 시기를 선택하라는 뜻이며, 가축(소·말·닭·개)을 죽이지 말라 하였으니 고기를 먹지 말라는 뜻이다.

불살생의 범주에 대한 해석으로 살생유택이 거론되고 있으니, 소태산대종사도 이를 고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계문에 '연고조항'을 넣어 "연고 없이 살생을 말며"(보통급 10계문)라고 한 것이다. "연고 없이 사육을 먹지 말라"(법마상전급 3조)고도 하였다. 연고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해독을 주는 것이라든가, 부득이 건강 회복을 위해 살생하는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을 살생하면 중죄라'는 문구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중생의 개념은 좁게 보면 인간이 초점이다. 따라서 '살인'에 관련하여 중죄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 외의 동물은 약탈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금수초목까지 동포로 알라는 대종사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불살생은 넓게 보면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도 포함된다. 총부에서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 생명을 아끼어 죽기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같은 것(대종경, 실시품 34)이라고 하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문목 1조를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실천에 옮겨야 하는가? 그것은 생명 상해와 같은 상극의 악연을 맺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소유욕이 극에 달할 때 다른 생명을 빼앗는 악연이 맺어지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덧붙여 오늘날 생태계가 파괴되는 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살리는 환경보호 운동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불살생계를 통해 지구의 평화운동으로 연결시키는 일이 요구되며, 그것이 종교가 짊어져야 할 보편가치요 구원적 사명이다. 그간 기성종교는 평화를 부르짖으면서 종교이기주의로 인해 생명살상이라는 세계전쟁의 70%에 연루되어 왔다는 점을 상기하여 중생을 살생하면 중죄라는 것을 더욱 각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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