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개 성상 교화사업등에 일생 바쳐

달타원 이정화 감찰원장이 지난 23일 정오 익산수도원에서 열반했다. 세수는 66세, 법랍은 49년이다.
일생을 교화와 교단대의와 계율을 지키는데 사표가 된 故 달타원 법사의 공부성적은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은 정특등으로 원성적 준특등에 해당되어 중앙총부 소관회의에서 장례절차를 교회전체장에 준하여 시행키로 결정, 지난 25일 오후 1시 중앙총부 기념관에서 대산 종법사 이하 원로와 동지, 후진들의 애도속에 발인식을 거행했다. 장지는 영모묘원. (익산군 왕궁 소재)
故 달타원 이정화 법사는 1918년(음) 7월 19일 경북 금릉군 구성면 상원리에서 훈산 이춘풍 법사와 경타원 정삼리화 법사의 1남8녀중 막내로 출생했다.
정산 종사와는 고종 숙질간이기도 한 故 달타원 법사는 원기 11년 대종사로부터 「正和」라는 법명을 받았고, 원기 17년에 초창기 총부건설의 어려운 형편으로 전주 제사공장에 근로한 바도 있었다.
원기 21년 부친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출가한 뒤 영산선원 공양원(2년), 서울교당 서기(2년), 대마교당 순교(2년)등을 거쳐 원기 28년부터 신흥(2년), 운봉(3년), 마령(4년), 종로(3년), 서성로교당(8년)등에서 교화에 전력하였으며 원기 52년부터 영산선원 교감(2년)을 거쳐 다시 대구 봉덕교당 교무로 8년을 봉직하는등 특히 대구지방에만 16년간을 봉직하면서 당시 교화의 불모지였던 경북지방에 항타원 종사와 더불어 심혈을 기울여 서성로 교당과 봉덕교당을 신축하기도 했으며, 그 후 교동교당 교감을 역임하여 36년간의 교화경력을 쌓게 되었다.
원기 64년부터 초대 영모원 원장을 지내면서 대산 종법사 경륜을 받들어 공원묘지의 기초를 확립하는 한편 후진들의 정신지도에 정성을 들였으며 원기 67년에는 감찰원장으로 임명되어 교단의 감찰지침과 법규준수의 방침을 마련하는 등 준법정신과 법치풍토 조성에 노력하며 예방감찰을 위해 금년부터 교구순방을 실시하다가 3월에 위암증세로 와병, 치료의 정성과 효과를 보지 못한 채 거연히 열반한 것이다.
대산 종법사는 25일 발인식장에서 『달타원 법사는 출가 49개 성상 초기에 대구교구와 서울교구의 오늘의 교세에 큰 밑받침이 되었으며 초대 영모원장과 감찰원장등을 역임하며 피가 마르고 눈물이 마르도록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다가 명실공히 사무여한의 전무출신이 되어 위법망구, 위공망사로 초지일관, 교단의 대의를 세워 후인들의 사표가 되었다』고 법문하고 『滄海萬里虛 無我無人天 岩上一化身 眼中十方現 ― (푸르고 넓은 바다는 만리를 통하여 비어 있는데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또한 하늘도 없도다. 바위 위에서 한 화신이 되니 안중에 시방이 궁글더라)』라는 법구를 내렸다.
7 ㆍ 7재는 매주 수요일에 해당되며 종재는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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