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달타원 법사의 생애는 오직 대의와 공을 앞세운 것으로서 후진들의 큰 귀감이 되었다. 평소 공이 아닌 것은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고 그래서 항상 의롭고 외로운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다 한다.
그렇게 대의와 계율을 귀중히 알고 철저히 지키면서도 매양 주위 동지들과 후진들에게 훈훈한 덕과 웃음을 안겨주어 그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특히 금년 3월부터 위암으로 판명되어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평소의 대의와 계율에 엄격함과 온화한 인품을 한치의 착오없이 열반에 이르도록까지 순일하게 보여주었다. 한다.
극심한 통증을 인내해야 하는 와병중에도 종법사의 건강과 주위동지들의 병환을 늘 염려하고 생기는 한편 병상의 괴롭고 불편함을 간호인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에게 간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다.
도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한 후 3개월이 지나자 「3개월의 병가를 마쳤으니 휴무계를 내라」고 당부하여 현직 감찰원장으로서 법규준수의 모범을 잃지 않았으며 약물로 인해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오직 교단과 동지들을 염려하며 「규칙 잘 지키고 동지간에 화합단결하여 어려운 때를 대처해 나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또한 신체의 청결에는 한번도 사양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응해 온 몸이 환자답지 않게 광채가 날 정도로 청결하여 백련같은 순결을 유지했다 한다.
특히 투병생활 가운데도 넉넉하고 여유있는 마음은 항상 주위에 웃음꽃이 만발하게 하여 간호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오히려 죄송할 정도로 분위기를 밝헤 했다하여 문병객의 접대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늘 살피고 당부했다.
달타원 법사는 그렇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열반을 맞아 후진들에게 생사해탈의 도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1년 9개월여의 감찰원장직에서 열반하여 갑자년을 기념하여 정문이 준공된 이래 처음으로 이 문으로 발인되어 영모묘원에 처음으로 안장되었다.
열반 후에도 교단의 숙원 사업인 영모묘원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스승과 동지들의 전통적인 장지인 알봉이 아닌 아직 정리안돼 거칠고 쓸쓸한 영모묘원 한 가운데 누우니 많은 동지 후진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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