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조화 균형하는 삶을 창조

8.15광복 42돌을 맞는 요즈음, 여름철 무더위다운 무더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채 입추와 말복을 훌쩍 보내고 그렁저렁 처서로 이어지면서 올여름은 마무리 될 것 같다. 어제는 우리 모두가 창황망조하여 머리를 돌려서 곰곰이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오늘은 저 악몽과 같은 풍재수마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서히 풀려나 제자리에 돌아와 서야하고 삶을 다시 불러일으켜 저마다 힘을 다하여 이 공동체의 생명을 복원해야 할 때다
7월 중순 태풍 셀마로부터 휘몰아온 천재지변은 삽시간에 전국토를 석권 강타하여 서울을 위히 중 ㆍ 북부 영호남 할것없이 적지않은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파괴의 손실을 안겨준 것은 근래에 경험해 보지못한 놀라운 충격이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가 의례 생각하기를 하늘과 땅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천재지변이라 하고 천재지변은 불가항력이라 하며 체념을 앞세운다. 천지자연의 변화가 인간계와 생물계에 재화로 나타나 생존의 뿌리를 위협하고 뒤흔들어 놓은 일이 비일비재의 전래적 경험적 사실일 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재앙을 극복한 역사적 경륜은 옛적에는 말할것도 없고 근세에 들어서서도 선진문명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가위 불가항력권내를 못 벗어난 실정이다.
그렇더라도 자연이 무너지는 등살에 인간생물의 중생이 어떻게 살아나갈 생존의 묘방안을 있을 수 있겠는가만은 우선 어느날 갑자기 일체의 소유와 일체의 생존을 모조리 다 상실당하고 마는 것을 의례이 겪게되고 어쩔수도 없는 인간사라고나 개탄하는 어두운 숙명관 앞에서 우리들은 정작 하늘에게나 땅에게나 자연과 인간에게나 다같이 한결같은 생명공동체로서의 생명의 외경과 생명질서의 존중에 대하여 어떻게 스스로 양심과 책임의식을 저버린채 살겠는가.
금년 여름 뿐 아니라 연례행사나 되는 것처럼 풍수해의 재난은 세계도처에 끊이질 않고 있다. 동남아를 위시 남미 브라질등 이른바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만 휘몰아 닥치는 풍재 수재 한재 이 세 난리는 진정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오십억 우리 인류공동체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가. 어찌하여 그리도 지지리 못 나가고 못 갖고 못살아온 중생에게만 천재지변의 숙명을 안고 무너져야 되는가. 과연 그들은 그들이 지은 중생의 죄업 때문에 그렇게 참담하게 속절없이 천벌중계를 감수해야 하는것이 과연 떳떳한 이치인가.
우리나라가 당한 이번 경우의 재난을 이런 유형과 반드시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치산 치수의 근원적 경륜을 운용하는 위정자를 비롯하여 우리 온 백성은 이 공동체의 수난현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새로운 자각이 다같이 도덕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며 그리고 불시에 휘몰아친 천재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산업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유비무환의 물 샐틈 없는 정책이 평소에 유기적으로 배합되었던들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만이 당하는 뿌리깊은 한은 최선을 다하여 최소화했을 것을 아니겠는가.
교단일이나 나라일이나 세계일이나 우주일이나 음양상승으로 다같이 살고 다같이 죽고 다같이 향상하는 상생의 기틀은 오직 하나다. 은생어해로 해생어은으로 돌고돌아 지극한 것이 오직 은혜의 소이일 따름이다. 어찌 천재지변이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는가. 진리와 하늘의 뜻을 항상 두려워하고 진리의 마음과 하늘의 지혜를 열어 인천이 조화균형하는 삶을 창조해야 한다. 광복 42주년을 맞는 오늘 교단과 나라와 세계가 거듭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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