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의 용광로로서

8월의 태양은 찬란하다. 붉게 붉게 타는 장미보다 8월의 태양은 더 찬란하다. 8월의 태양을 잉태한 그 밤과 그 새벽은 더욱 고요하고 아름답고 장엄하기만 하다.
1919년 8월 21일 「혈인」의 밤, 「법인」의 새벽―무시광겁의 이 지겹고 괴로웠던 긴긴 밤의 어둠을 불사뤄 버리고 진정 개벽으로 열린 이 한 새벽을 위하여 구인선진으로부터 이룩한 구천에 사무친 일체생령의 기도는 마침내 이 우주에 충만한채로 이글이글 타는 태양으로 화신하여 이제 말없이 온 누리에 비치기 시작하였다.
그날의 새벽, 그날의 역사, 그날의 희생, 그날의 죽음, 그날의 서원, 그날의 태양, 그날의 말씀이 영원의 생명으로 진리의 사명으로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거듭나고 거듭나야할 오늘의 새 날 새 아침을 맞이하였다.
그날의 말씀, 그날의 역사, 그날의 감응을 어떻게 다 헤아리고 무엇으로도 되새겨 볼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는 묵묵하고 적적한 가운데 중생으로서의 한가지 사랑과 사람으로서의 붉은 피가 흐르고 있는 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하는 무위자성의 있음과 그 요여함은 그 누구도 거스리지 못한다.
방언공사를 9인 제자와 더불어 마치게 된 대종사께서는 이윽고 이 아홉 사람들에게 기도를 명하셨다. 방언공사는 대종사께서 이 역사와 이 인류에게 진리의 실체로서 보여준 새 생명의 개벽공사였고 대종사께서 아홉제자와 함께 행사신 8월의 기도는 끊임없이 새롭게 우주의 공동체로서 거듭나고 거듭나는 삶의 현장으로의 정착을 다지는 현실적인 작업을 의미한다.
그 당시 대종사께서 9인 제자들에게 이르신 말씀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한 인간적 주제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길일뿐 무엇하나도 더한 것 덜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천지신명이니 천의니 음부공사니 살신성인이니 하는 표현은 일찍이 뿌리뽑힌 백성들이 육화하여 온 가장 경건한 언어이며 민중으로 상징되는 질이 높은 천어였으니 여기에 하늘의 뜻을 움직여서 감동 감응하는 그 울림이 없는 울림도 저마다 스스로가 마지 못하는 사람으로서의 몸부림이었다.
이와같은 몸부림 그대로의 표정과 실상이 우주적이며 총체적인 그 지극한 흐름의 중심생명으로 돌아와 그 사무친  기도의 산 맥박으로 하여금 「혈인」을 아로 새기게 했다는 것은 분명 무명이 사로잡은 이 시대에 있어서는 기적에 속하는 신화이겠지만 그것은 개벽하는 신선한 새 생명이 아니면 지니지 못하는 새 생명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성을 위한 관념이나 상징성을 넘어서서 역사의 현장으로 창조의 작업장으로 일체중생과 더불어 함께사는 하나되는 사랑과 삶으로 저마다 모두가 진리의 생명을 깨닫고 일체를 다 바쳐 줄때에만 하나의 전체와 더불어 나의 개체가 살아나고 세계인류와 나라와 겨레가 함께 살아나가는 길이 된다. 법인의 참 뜻은 우주 전체가 끊임없이 진리의 새 생명으로 거듭나고 거듭나는 역사적 현실에서 개벽을 성취하는 것이다.
오늘날 개벽의 그 의미와 법인의 그 진정 거룩한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기 진리의 뜻을 심는 원불교의 가치관 교단관 진리관 역사관으로부터 확연히 드러나고 더욱 무한으로 다져가는 구체적인 삶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것은 더욱 개벽의 새 역사 그 새 생명의 용광로서 지금 여기에서, 그 언제 그 어디에서나 불타고 있는 영원한 현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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