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속에 찾은 삼밭재
중간리드 = 밤새시린 눈꽃송이는 천상의 우담발화
일심정성 기도드린 거룩한 구도의 터전
원기 76년 2월 20일.

훌쩍 스쳐서 당일치기로 쫓기듯이 다년간 지난날들과는 달리 영산에서의 하룻밤은 퍽 인상적이었다.
영광당의 바람과 나무와 물과 돌멩이 하나하나에도 새부처님의 숨결이 배어있는 까닭이리라.
 밤늦게 교무님이 도착하였다. 우리는 초면이면서도 조촐한 다과상을 사이에 놓고 차를 마시며 결의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이미 오랜생의 인연이 우리를 한방 안에, 그것도 단둘이 않게 한 것이리라.
 자정이 훨씬 넘어 잠들었는데도, 눈을 떠보니 5시다. 가까스로 밖에 나서니 아, 이 온 천지에 가득하지 않은가.
그리도 정갈한 눈이 그리도 탐스럽게 축복으로 내리는가. 바람마저 자고 기온은 한껏 내려갔어도 축복받은 가슴은 작은 두근거림으로 훈훈하다. 그런데 오늘 삼밭재를 찾기로한 예정이 눈으로 하여 혹 차질을 빛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대종사님은 10대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풍운 우로상설, 온갖 악천후에도 한결같은 정성을 기울이셨다는데.
 아침공양을 마치고 삼밭재 기도실 등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의 맨손 가까운 차림이었으나, 정륜교무의 배려로 파카와 등산화까지 갖출 수 있었다.
오후에 교무님이 올라오시겠다는 걸 혼자 밤을 지내고 싶다는 간청을 드렸다. 취사 준비는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라면과 김치 외에는 극구 사절했다.
기도터를 찾는 길에 먹는 것이 대수겠는가.
 노루목을 지나 대각교를 옛집터를 다시 바라보며 산길을 접어들었다. 눈이 발목을 넘고 길이 제법 미끄러웠다. 그러나 다시 대종사님의 지극하는 정성에 비추어 생각해 보니, 조금 추우면 어떻고, 조금 미끄러우면, 그래서 눈밭에 나딩글면 어떻겠는가.
 정륜교무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인생과 에술에 대해서, 역사와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종사님의 거룩한 생애와 위대한 경륜에 관하여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간간이 아홉분 선진들의 기도봉과 개교의 숨결이 서려있는 지명도 자상하게 안내해 주었다.
 11시경 드디어 삼밭재마당바위에서 다다랐다. 잠시 묵상심고를 드리고나서 전망을 살폈다. 눈앞에 펼쳐진 크고 작은 산줄기들이 다소곳이 엎드려 이곳을 행해 경배드리는 듯하다. 멀리 남쪽으로는 시야가 훤히 트이고 들판이 펼쳐져 있다. 대종산님 당시 영산원에서 법회를 마치고, 대중들과 함께 이곳에 오르시어 장차 세계 제일의 명소가 되리라 하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꼭 그럴 성싶다.
 재작년 가을, 당시  교구장님 인솔하에 전주교구 부부 성지순례단으로 대형버스 10대가 함께 찾아왔을 떄도 여기 오른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잡초만 거칠었던 바로옆에 아담한 건물 한 채가 산뜻하게 눈에 띤다. 삼밭재기도실 자물쇠를 여니 중앙에 법신불을 봉안한 기도실이 있고, 좌우에 각각 기거할 방이 하나씩 있다.
나는 그중 왼쪽 마당바위가 바로 보이는 방을 쓰기로 했다. 인간문화재 김월하님. 당신의 고마우신 원령으로 이 중생이 이 성스러운 곳에서 하룻밤 쉬어갈 수 있게되어 감사합니다.
 곧 여장을 푼뒤, 오래 묵었던 방에 불을 지피고 나서 정륜교무의 설명에 따라 아홉분 선지님의 기도봉을 하나하나 들러보았다. 생각할수록 거룩하고 장엄하신 자태를 잊을 수 없으리라. 점심은 라면과 김치뿐이었지만, 이 세상 어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게 맛있었다. 여러 가지로 자상한 배려를 해주신 정륜교무가 저만큼 내려가고 있다.
 아, 이제는 정말 혼자다. 우선 기도부터 드려야겠는데 생각이 모아지지 않는다 의 정적 속에 오직 바람소리만 거칠고, 생각을 비우면 비울수록 더욱 커다란 번뇌의 덩어리가 끝없이 엄습해 온다.
 여기 삼밭재에서 5년남짓 일심정성으로 산신령을 만나고자 기도했던 소년대종사님의 그 안타까움에 어림택이나 닿을까 문득 대각하신 후의 오도송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
에 이어 연작으로 써오고 있는 <바람 시편 9>를 적어본다. 부제는 어찌할꺼나가 무난할 것같다.
 무엇이 추녀를 외로운 종을 저리도 요란하게 울려대는가
 그 무엇이 한잎 남김없이 벗어버린
 겨울가지를 흔들며 달려 오는가.
 장차 이 일을 어찌할거나
 장차 이 일을 어찌할거나
 마주한 손길 구천에 사무치고
 간절한 서원 영겁에 뜨거운 것을
 산신령님 도사님 어디 계시는가
 장차 이 일을 어찌할꺼나.
 모든 소리가 끊어진 고요의 품에서
 모든 소리가 살아나 수런거리고
 어느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옷깃 스쳐간 인연들이 다가오고
 원고지 사각의 칸에 갇혀버린
 삼밭재 기도실의 밤은
기도한 마디 없이 깊어가는데,
 어디서 불어오려나
 먹장구름 걷어낼 맑은 바람은
 둥근 달 구수산 높이 솟아
 온 누리 밝힐 한 줄기 바람이여
 정녕 어느 떄나 불어오려나
 저녁을 들고나서 방이 식어가기에 장작 한아름을 더 지폈더니, 어느새 방바닥이 쩔쩔 끓는다. 그런데 무슨 바람은 저리도 무섭게 불어대는지 금시라도 문짝이 떨어져나갈 것만같고, 촛불이 길길이 뛰며 흔들린다. 바깥으로 나와보니 잠시 눈은 그치고 하늘에는 별들이 썩 가까이에서 차갑게 빛난다. 마치 에 절은 나를 질책이나 하는 듯이 .
 산골의 밤은 참 빨리도 어두워지는가. 밤은 참 빨리도 어두워지는가. 밤이 깊다.
이렇듯 심산궁곡에서 자신과 싸우며 삶의 슬기를 열어간 많은 선각을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외롭다.
그리고 부끄럽고 속좁게도 온통 <나>부터 생각난다.
 내집  내가족  내부모  내직장  내, 내, 내 . 나속에 우주자연과 삼라만상을 모두 맞아들인 부처님의 세계에 비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그러나 그 어리석고 부끄럽고 하찮은 존재의 인식에서부터 새로운 세계의 눈은 열리리라. 이 고요속에 내 소중한 이웃과 가까운 인연들의 축원을 합장하며, 흔들리는 촛불을 꺼야겠다.
   <시인  전주교당교도 부회장  전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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