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발전의 새로운 전기 모색하는 계기 이뤄

 서울서부교구 구로 교당(교무 김혜봉) 신축봉불식이 3일 오전 10시 30분 박장식 원로수위단 중앙단원 이철행 교정원장을 비롯, 출가, 재가 교도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해됐다.
 조의택 사무장의 사회로 진행된 봉불식은 이경일 교도의 경과보고와 김 교무의 봉안문 독배에 이어 교당신축공로자에 대한 사상이 있은 후 종법사 치사(이 교정원장 대독), 김인철 교무의 설법, 김기배 국회의원과 최준명 교의회 의장의 축사, 서울 원음합창단의 축창이 진행됐다.
 구로 교당은 원기 57년 박진신교도(현 교도회장)의 염원으로 성루교당(당시 교무 이정은)에서 출장법회를 실시하게 되었다. 원기 58년 4월 초대 유현정 교무가 부임, 당시 서울교당 박성문, 이귀도, 최주현 교도 등의 협력으로 동년 5월 봉불식을 갖고 새롭게 교화를 시작했다. 원기 64년 6월 제2대 서위진 교무가 부임 어린이회 학생회 청년회를 차례로 결성한 뒤 원기 68년 7월 현 위치인 구로 2동329-45호 대지 82평의 건평 48평 건물을 매입, 생활관으로 사용하고 법당은 따로 임대하여 사용하면서 법당 신축을 추진해 나갔다.
 원기 71년 2월 김혜봉 교무가 부임한 후 교당 신축을 위해 전교도가 노력, 현 대지 옆 건물 1채(대지 42평)를 매입하였으며 박진신 교도회장 등 그의 가족 등이 교당 부지 매입 및 신축기금으로 1억원을 희사했다.
 원기 75년 교당 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 금년 2월 기공식을 가진 후 4억여원의 총공사비로 9월 완공하고 이날 봉불식을 갖게 된 것이다.
 새로 신축된 동 교당은 대지 1백24평 연건평 2백50평의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로써 1층은 탁아시설, 2층은 소법당과 생활관, 3층은 대법당, 그리고 지하는 청소년 법당과 봉공회실, 훈련 실을 갖추고 있다.
 이날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종법사 표창장 : 교도일동 종법사 표창패 : 박진신, 허성남이경일 부부 교정원장 표창패 : 김효성박이순 부부 , 배원근문덕현 부부.

하동교당
 진주교구 하동교당 신축봉불식이 3일 오전 11시 출가재가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날 이정원 사무장의 사회로 진행된 봉불식은 정연원 교도회장의 경과보고와 김효철 교무의 봉안문 독배, 종법사 치사(정도윤 재무부장 대독), 박정훈 교무(전주교구장)의 설법, 법호수여식, 동욱 스님(쌍계사 부주지)의 축사 등이 있었다.
 동교당은 원기 61년 진주교당(교무 한제선)교도들의 원력으로 강평리 250-34번지 건평 20평의 가옥을 성금 40만원으로 전세 집을 마련하여 초대교무 김남명 교무가 부임, 동년 5월 18일 첫 봉불식을 거행했다.
 동년 12월에 진주교당 교도들의 합력으로 전세로 교당을 마련, 교화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원기 63년 3월 26일 정식으로 요인회와 회장단을 출범시켜 일반 교화의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 원기 65년 10월 이선금 교도의 후원으로 동교당 285-1번지에 교화의 장소를 이전하여 교화의 폭을 더욱 넓혔다.
 그러다 원기 68년 1월 2대 이법은 교무가 부임하여 원기 71년 2월 요인회 결의에 따라 읍내동 193-2번지 대지 5백7평을 교당 부지로 매입했다.
 원기 74년 3대 김효민 교무가 부임하여 교당신축을 주목표로 정하고 전임교무로부터 이월 받은 신축기금, 공평리 가옥 매도금, 교도성금 및 대출금 등 1억4천7백만 원으로 현 부지에 건평 1백30평 범위 내에서 완공을 목표로 건축가 김해영 교도와 직영을 하기로 합의, 원기 75년 10월에 기공식을 갖고 공사를 진행했으나, 건축 기자재비  상승과 인건비 상승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슬기롭게 대처, 총 공사비 2억3천만 원 연건평 2백평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철근콘크리트 2층 건물을 완공하고 이날 봉불식을 거행했다.
 특히 동남풍(원불교학과)의 사물놀이로 봉불식 분위기는 흥겨움을 더했다.
 시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종법사 표창패 : 정성준이선금 부부, 정연원박근복 부부 교정원장 표창패 : 오도상정순화 부부, 정희순, 유명원황민선 부부 교구장 표창패 : 임화성, 박소영 교무 감사패 : 김해영

여의도 교당
 서울서부교구 여의도 교당이 이안봉불식이 3일 오후 2시 박장식 원로수위단 중앙단원을 비롯한 출가재가 교도 8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허현발 교도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봉불식은 한공선 교도의 경과보고와 시상이 있은 후 종법사 치사(박원로수윈단중앙 대독), 이제성 교구장의 설법, 김정수 국회의원의 축사, 이도봉 교도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성루 원음합창단의 축창이 있었다.
 여의도 교당은 원기 65년 중구 교당의 연원으로 여의도 장미상가 3층 27평 홀을 전세를 얻어 초대 이수근 교무가 8월에 부임, 봉불식을 갖고 교화를 시작했다.
 경제적인 여건과 교무의 생활을 염려한 교도들은 뜻을 모아 법당과 생활관을 분리키로 계획하고 추진, 원기 66년 3월 제일상가 713호 38평을 법당으로, 삼부아파트 5동 306호(27평)를 숙소로 얻은 후 원기 66년 4월 이효원 교무가 부임하였다.
 원기 67년 4월 동 아파트를 매입하고 그 곳에서 어린이 법회를 보기 시작하는 한편 법당마련을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 백상빌딩 601호 46평을 매입했다. 그러나 법당이 빌딩의 사무실인 관계로 집회의 소음 등을 빙자하여 주위의 제재가 심하였으며, 매년 교도수가 증가함에 따라 법당이 협소한 관계로 원기 70년 영창빌딩 4층 4호, 5호 80평을 매입하는 등 교화의 장을 넓혀갔다.
 전 교도가 단독으로 된 법당을 갖고 싶었지만 여의도의 특성상 빈터가 없어 한 건물을 중점 매입키로 하고 원기 74년 3월에는 영창빌딩 3층 213평 전체를 매입, 청소년법당으로 상용하면서 차례로 401호와 403호를 그리고 원기 75년에는 402를 매입하는 등 3, 4층 모두를 매입한 후 지난 1월 4층 전체를 대법당으로 개축하였다.
 한편 봉불식을 마치고 축하공연으로 김성애씨의 창과 임이조 무용단의 내 영혼 가는 곳에란 창작 신앙무용이, 그리고 김용옥 교수의 기 철학과 원불교의 해석이란 사상 강연회가 진행됐다.
 이날 시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종법사 표창장 : 교도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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