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삼천대천세계소유미진(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이 시위다부(是爲多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사대 심다(甚多)니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제미진(諸微塵)은 여래설비미진(如來說非微塵)일새 시명미진(是名微塵)이며 여래설세계(如來說世界)도 비세계(非世界)일새 시명세계(是名世界)니라.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이 이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 말씀하되 심히 많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모든 미진은 여래가 미진이 아니라고 말할새 이것을 미진이라 이름하며 여래의 말한 세계도 또한 세계가 아닐새 이것을 세계라고 이름하나니라.

미진이라고 하면은 하나의 먼지, 티 같은 것이다. 미진이란 것은 중생의 인격, 범부의 인격, 성현의 인격이 한이 없다. 사상이 중심이 되어 구류중생이 나오고 구류중생이 더 나아가 한량없는 종종의 중생심을 낸다. 그 중생심의 수효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미진 수만큼이나 많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 미진 수만큼 많은 그 마음 하나하나, 잡념 하나하나, 또는 정념이면 정념 하나하나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번뇌 하면 번뇌 그것으로 그쳐버리는 것이 아니고, 또 선심 하면 선심 그대로 그쳐버리는 것이 아니다. 보리심 하면 보리심 그대로 그쳐버리는 것이 아니다. 미진 수만큼 많은 번뇌나 미진 수만큼 많은 보리심이 다니면서 종종의 세계를 건설하고 다니는 것이다. 이것이 일체유심조다.

스승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밖으로부터, 외부로부터 오는 경계라고 하는 것은 순경이 되었든지 역경이 되었든지 전부다 자기 그림자다. 그냥 그 속을 모르면, 좋은 것이 오면 저쪽에서 나 준다고 그냥 고마워하고 입에 무엇이라도 있으면 그것이라도 내어서 먹여줄 것처럼 좋아라 하고, 반대로 저쪽에서 조금 아닌 행동으로 나를 괴롭게 한다면 그 사람을 금방 잡아 죽일 것같이 원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 자기 그림자다.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놓고서는 저쪽에다 책임전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밖으로부터 오는 모든 경계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물감처럼 따라다니면서 각각 종종의 세계를 칠하고 다닌다. 만약에 내 마음 가운데 보리심이 있다고 하면 그야말로 천국을 건설하고 다닐 것이고, 번뇌심이 있다고 하면 지옥을 건설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세계는 말 한마디 해서 상대방이 반응하는 것도 벌써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세계를 아무렇게나 건설해놓고 그 세계가 자기에게 부딪힐 때는 괴로워서 못 견디고 아우성한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번뇌의 마음을 보리심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만덕산훈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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