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 않는 공부가 큰 공부다
전쟁 속에서 대중의 안녕 기도

 가을이면 노란 자태를 드러내는 교정원 은행나무 아래에 우리 집이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총부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네 살 때는 우리 3남매와 새벽이면 조실 문안을 매일 다녔다. 그리고 총부 구내에 살았던 보영전은천은수은두은세은복균복환 등 식구별로 조실 문안을 했다.
 조실 문안을 드리러 가면 가끔 대종사님께서는 조실 창밖을 내다보셨다.
 모르고 늦게 간 날은 숨어있다 문안을 드렸다. 총부구내 식구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나들은 학년말이 되어 통지표를 받으면 어김없이 대종사님께 보여주고 감정을 받았다. 이런 생활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조실 문안은 유년회 15가지 계문 중 하나였던 점도 있었다.
 10가지는 하라는 계문이었고 5가지는 말라는 계문이었다. 그 계문들을 외우지 못하는 아이는 마대에다 넣고 감나무에 나지막이 매달아 두었다. 그 당시 박창기 선생이 어린이회 담당이었으며, 계문을 외웠으면 꼭 실행하도록 지도를 했다.
 내가 6살 때 대종사님께서 열반에 드셨지만 유년회는 계속되어 박창기 선생에 이어 융타원님이 우리들을 지도했다.
 당시 기억에 남는 것은 일제말기였기에 대각전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새벽이면 일본군들은 군모를 눌러쓰고 총옆에다 단검을 꽂고 일본군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행진을 했던 것이다.
 그때 새벽이면 우리들은 이리, 황등간 도로인 신작로(중앙총부 앞도로) 청소를 하면서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국민학교 2학년 2학기때 해방되었다.  해방후 범산종사님이 우리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는데 그 기억들이 새롭기만 하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신작로 청소를 하려고 나가다 보니 복숭아 하나가 우리 집 앞까지 굴러와 있었다. 당시 총부에서 경영하는 과수원이 대각전에서 우리 집 앞까지 인 까닭에 복숭아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대각전 주위 소나무에다 그 복숭아를 숨겨 놓고 청소가 끝난 후 찾아서 먹고 있었다. 이때 정산종사님과 제산 예감 님이 대각 전에서 내려오시다가 그 광경을 보셨다.
 제산예감님은 나를 보고 너 복숭아 따먹었지라고 물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떨어진 것을 주워 먹었어요라고 말했다. 제산 님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자꾸만 따먹었다고 말씀하셨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정산종사님께서 사실대로 이야기 해 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사실대로 정산종사님께 보고를 드리니, 정산종사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셨다.
 원기 35년 6.25동란때 정산종사님은 대각전에 가 계셨다. 유엔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송대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리고 공습 비행기 소리가 들이면 송대옆(화장실 뒤쪽) 방공호에 들어가셨다가 평시에는 송대에서 생활하셨다.
 하루는 내가 우리 집 논에 새를 쫓기 위해 서 있다가 폭격기 3대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정산종사님께서 합장을 하고 심고 드린 연후에 합장을 한 상태로 방공호에 들어가셨던 장면을 아울러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위력인지 총부 주변은 북한군 기마병이 주둔해 있었어도 폭격을 당한 적이 없었다. 또한 이때는 북한군이 송대와 사가를 제외하고는 총부 구내를 점검하고 있었다.
 한때 집에서 키우던 돼지 6-7마리가 북한군 숙소로 들어갔다. 내가 그쪽으로 들어 갈려고 하니 북한군 보초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돼지들을 다른 쪽에서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한참 있으니 돼지들이 송대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돼지들을 발견하고는 집 쪽으로 몰고 오려고 하니 자꾸만 송대 밑(현 연못)쪽으로만 가는 것이었다.
 정산종사님께서 그 아래 잠깐 내려 오셨다가 돼지들이 노는 것을 유심히 보셨다.
 너희 집 돼지들이냐?
 예,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니 말을 듣지 않습니다.
 돼지는 땅만 쳐다보니까 그렇다. 돼지들이 자기 집을 찾고 있는 중이다. 화내지 말고 순하게 데려가라.
 그 말씀이 덜어지자 말자 돼지들은 집 쪽으로 돌아서서 갔다.
 그 당시 총부 정문 옆에는 불법연구회 간판이 걸려 있었고 대문도 목재 문이었다.
 북한군들은 보초교환을 할 때면 목재 문을 총에 붙은 대검으로 찌르면서 보초 교대 자를 부르곤 했다. 구경 삼아 우리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북한군들이 우리들을 보고 가까이 오라 하여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대각전을 가리키면서 둥근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리들이 부처님이라 대답하자 북한군들은 껄껄대고 웃기만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후인 원기 42년에 나는 교학과 6기로 입학했다. 여름방학을 지내고 나서 비가 온 후 총부 청소시간을 풀을 뽑았다. 내가 조실 앞에서 풀을 뽑고 있으니 정산종사님께서는 지나가는 길에 물으셨다.
 네가 덕산님 아들이지, 공부 잘 하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방심하고 지내지 말아라. 방심 않는 공부가 큰 공부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가 제대로 없었다. 주로 우리는 대종경정전, 불교학, 불교시가 등을 배웠는데 강사들이 이의로 교재를 만들어 강의를 했다.
 모든 것을 정비해 나가는 과정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정산종사님은 이런 상황들을 해결하려고 하셨으나 우리들이 학교 다니던 중 열반에 드셨다.
 정리 : 육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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