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생활
제복사 교무
모두 어려운 학생과 교무 도와

 큰 회상을 일어내는 데에는 재주와 지식과 물질이 풍부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물론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오직 울타리가 될 뿐이요, 설혹 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가진 참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나니, 그가 참으로 알뜰한 주인이 될 것이며 모든 일에 을 보나니라.이는  교단품 32장의 대종사 법문이다.
 이 법문을 전무출신 생활의 표준으로 삼아 교단의 한 모퉁이에서 일의 와 명예의 를 계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책임완수에 여념이 없는 제복사 교무(47세)를 찾았다.
 위에 착요하는 을 만드느라 재봉틀 위에 앉아 일하고 있는 교무에게 인터뷰우를 요청하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며 사양하는 것을 이일도 에 합력하는 자세로 따라야 한다며 설득하여 취재에 성공하였다.
 교무가 교복과 법락은 물론 여성교무들의 각종 제복과 일용품을 취급하고 있는 정화제복사에서 근무하게 된지도 9년여 세월이 흘렀다. 선천적으로 솜씨는 있었으나 전문적으로 바느질을 하지는 않았던 교무는 정화제복사로 부임하여 교무와 교무로부터 지도를 받은후 지금은 상당한 재능의 소유자로 인증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단의 어떠한 구석에서라도 일할수 있는 곳에 살겠습니다.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하기 싫고 못하겠다는 생각도 버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쉼없이 일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교무가 영산선원을 마치고 동산선원에 진학하기전 수계농원에 근무하면서 당시 농원장이었던  대봉도 앞에서 약속한 전무출신 신조이다.
 교무의 장한 정신과 생활이 은연중에 조금씩 주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원불교학과에 다니는 예비교역자들의 입을 통해서 비롯되었다.
 이는 일신의 생활비로도 흡족하지 않는 전무출신 을 한푼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알뜰히 모아 인연닿는 어려운 예비교무들을 꾸준히 도와 왔기 때문.
 교무는 정말 양말 하나 치마 저고리 한 벌이라도 자신의 것을 사본적이 없습니다.
수도원 님들이 열반한후 남겨진 옷가지 등속으로 만족하면서도 학생들은 물론 찾아오는 초창교당 교무들에게 비록 큰 도움은 못되지만 형편닿는 대로 보탬이 되려 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대종사님 성업봉찬사업에 1백탑을 쌓은 점입니다.
 교무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어느 선배교무가 귀띔해준 감동어린 이야기였다.
 5년전에 들은 적금(월불입 금 2만7천3백80원) 2백만원을 며칠전에 다른 사람을 시켜 찾아 보관케한 교무가 대만으로 유학을 떠날 때 지원할 예정이란다.
 영광군 백수읍 지안리가 고향인 교무는 14살 때 부모와 더불어 로 이사해 살았고, 작은 아버지(문석일 당시 전무출신)의 연원으로 입교, 익산교당에 다녔다.
 총부 구내를 행보하시는 종법사님을 멀리서 뵙고 친구들과 함께 부처님 가신다며 뒤를 따른 적이 여러번이었습니다.
 부친(문제덕)이 4살 때 열반하자 어려운 가세가 더욱 기울어져 남들이 다니는 학교에 갈수 없었던 교무는 공부를 할수있다는 온천교당  교무의 권유에 따라 어머니(손세완)도 몰래 부산으로 향했으니, 이가 첫 의 길이 되었다.
 며칠후 초량교당으로 가  교무를 모시고 식당공양원으로 만9년을 근무하면서, 전무출신의 기본정신인 멸사봉공의 정신을 깨닫게 되었다.
  10년을 맞으며 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당시 교단 사정으로 9년을 공부하고도 순공비생이 되지못한 관계로 교무의 수학과정의 애로는 말할수 없었다.
 영산선원을 졸업하고 도저히 선원을 가서 수학을 계속할수 없을 형편에 놓이자, 를 정하여 공부하라는 권유도 받았으나 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수계농원을 찾아 2년동안 온갖 힘든 일을 헤쳐내야 했다.
 원기65년 동산선원을 졸업한 교무는 다시 대봉도님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수계농원으로 첫발령을 받아 일하는 를 보였다.
 이처럼 어렵게 수학과정을 마쳐야 했던 자신의 지난날들, 마음놓고 공부할 수 없었던 간고한 환경들을 자력으로 개척해야 했던 교무는 그때부터 과거의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예비교무들을 보면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 무엇이든 선뜻 내주며 학업에 열중하도록 격려한다.
 비록 큰 도움은 못되지만 조그만한 나의 정성이 그들의 여린 마음에 용기를 심어 주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교무는 진정 보살정신의 산 실천자라 여겨졌다.
 정화단 부설로 운영되어 오던 정화제복사가 금년부터 수도원으로 그 운영권이 이관되어 온 것을 계기로 교무님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발분의 합심합력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영원하다는 교무를 보며, 희망찬 정화제복사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이한생 이공부 이사업을 위해 온통 다바치겠다는 교무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사업은 가진 것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을 절감할수 있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들과 들을 이해하고 도우며 사는 교무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 취재부장
사진 교복 위에 착용하는 법락을 만들기 위해 재봉틀 일을 하는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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