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지어 날아오르면
빛으로 일어서는 나뭇잎

싱싱한 음계 따라
되어 벙그는 연꽃
송이

손매디 넘치는 님의 숨
결 더불어
향그런 옷자락 슬며시
어루만지시는
님의 모습이여
님의 말씀의 은성한 향
연이여.

 지난 가을 바로 이 자리에서 노래한 작품 <  22-님 에서>를 나직이 읊어본다. 아직은 학창에 머물던 시절 전국학생강습과 청년강습을 마치고 여기 서서 촬영한 기념사친의 모습도 생생하다.
 탑들 한바퀴 돌면서 를 하나하나 새겨본다. 그리고서 대종사님의 간난신고와 구도역정의 위대한 생애를 감격으로 우러른다.
 곁에 모신 <  >를 마음속에 깊이 한 글자씩 받들고, 정산 종사님 성탑을 참배한 다음, 총부 최초의 건물인 과 꼬두마리집이 세워졌던 자리로 발길을 옮겼다. (시창 9년) 4월, 봉래정사로부터 하산하셨을 당시만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이도치재 마루에 움막을 매고 초가 2채 17칸을 세운정도이니 그 교세가 오죽이나 한미하였던가.
 익산군 복일면 신룡리(지금은 이리시 신룡동)344~2번지-. 솜리부근은 도 광활하고 또는 교통이 편리하야 의 생활이며 각처 회원들의 내용이 편리할 듯하니, 이곳으로 정함이 어떠하냐?고 들으신 대종사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같다. 척박한 땅이나마 거름()만 잘하면 옥토(갈은 )가 되리라는 확신 아래, 교단 인재양성의 못자리로서 구실을 다하고 있는 터전이다.
 식민지 현실하에서 먹고입는 무엇하난 넉넉한 것 없이 눅눅한 방, 부족한 침구에 누울지라도, 선진님들은 밤마다 금빛 찬란한 새 용()이 힘차게 승천하는 꿈을 가꾸셨으리라. 중앙총부 신축에 혈성을 기울이신 선진님들께서 고초 속에 누리신 법열을 생각하며, 오늘 우리의 넉함에 감사드리고 에 보답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새삼 느낀다.
  만나기만도 참으로 어렵다는데, 새 부처님의 새 회상을 마나서 바른 길을 따라 수행하는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한량없는 은혜에 감읍하여 절하고 또 절하는 님.
 법열에 넘쳐서 노구에 백발을 휘날리며 너울너울 춤추는 문정규  김기천님.
 동방에 솟아오르는  눈부신 햇살 맞으며 누리에 퍼지는 한 둥근 빛으로 구름처럼 꽃처럼 피는 벅찬 감격이여.
 얼마나 배가 고프셨기에 헌천이나 껄떡같은 별명을 훈장처럼 달으셨을까. 얼마나 가난에 사무쳤으면 이불 한 채를 방의 네귀퉁이에 묶고서 추운 밤을 지새웠을까. 이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벌 볕바른 터에서 생명의 빛을 올올이 짜내셨으니, 단 두채의 초가에서일망정 누리에 퍼지는 향을 피우셨으니-.
원기10년, 당시 의 혁신적인 교리와 각종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훈련의 자취도 더듬어 보았다.
  초선지에서 열두제자와 함께 초선을 마친후 확정된 정기훈련의 11과목과 상시훈련의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를 생각하면서, 수양  연구  취사의 을 두루 갖추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그리고 이해 6월 26일부터 9월 23일까지 실시된 제1회 정기훈련의 자취를 상상하며, 조금 전에 마친  훈련내용을 대조해보기도 하였다.
 그토록 힘겨운 초창의 생활 속에서도 서로 믿고 의지하는 모습은 우리를 감동케 한다.
 한번은 이동진화니믜 가오루 <은단의 이름> 구입주문을 생선 가오리로 잘못 알고 사오신 오창건님의 일화를 떠올리며, 속으로 한없이 웃었다.
 가오루 사오랬는데.하고 어이없이 불평하시는 동진화님께, 이게 가오리 아니다요?하고 반문하시는 창건선진님. 훈훈한 정이 건네는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그날은 총부가족 모두가 모처럼 생선공양을 드셨다가 이 아니 다행이신가.
 그후 제정하신 학력고시와 학위등급법, 그리고 출생  성년  혼인  상장  제사등의 의례들을 생각하며 대종사님의 위대한 선각의 혜안을 다만 경탄할 뿐이다. 그밖에도 대우법, 신분검사법과 같은 일체의 제도를 펴신 위력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어느 하나 새교법 아님이 없고, 중생을 건지고자 하시는 성충 아님이 없다.
 그리고서 원기13년 3월 26일에 열린 제1회 기념총회의 모습과 당시의 교운을 헤아려보면서, 오늘 우리가 해야할 소명을 생각해본다. 을 길러내고자 오만년 대운을 타고난 일원회상의 앙양에 전력하면서, 성불제중의 큰 서원을 기필코 성취해야 하리라.
 영산  변산  익산각지의 성지순례를 마감하면서 의 시오 이신 새부처님의 크옵신 혜광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초창기 교단사에 조금이나마 접근하면서, 선진님들으 거룩한 자취에 감화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능만 하다면 좀더 여유를 가지고 깊이 있게 순행하고 싶다.

<전주교당 교도부회장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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