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惑의 나이
사진
柳世明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이가 40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는 시작하여야 죽어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아니하리라.」천도품 1장의 말씀이다. 일찍이 링컨이 나아 40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질줄알아야 한다고 했으며, 孔子는 不惑의 나이로 못박아 놓은 나이가 내게도 순리따라 어김없이 찾아왔다.
 聖人들이 成熟의 기점으로, 또한 責任져야 하는 나이로 잡은 이 불혹의 나이를 맞으며 마음은 아직도 20의 기분이고, 처음전무출신 서원하고 공부하던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돌아보면 많은 시간들이 흘러갔음은 분명하고, 거울에 비쳐지는 내모습은 20대의 그 모습이 아닌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많은 후배들이 해마다 늘어나 이제 선배의 역할도 때로는 의젓하게 해내야 함에도, 아직도 어른들을 모시는 후진의 역할이 내게 맞는 듯, 훨씬 부담없고 익숙하다.
 청년들, 학생들, 심치어는 어른교도님들부터도 어른 대접을 받아온 지는 오래지만, 막상 책임질 나이에 이르고 보니 진짜 걸맞는 어른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시간적으로야 20의 세월을 거퍼 산 것은 분명하니 20의 청년에게야 과거 세대로 여겨질 것은 당연하겠다. 그러나,요즘은 80대의 노이도 드물지 않으니, 80대의 반밖에 안산 나는 아직도 살아갈 날이 산 만큼은 나아 있다고도 본다면 아직은 젊음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겠다.
 아무튼 사회인들도 이나이쯤이면 중년으로 가정적으로나 직장에서나 자리가 잡혀 어느 정도 안정된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교단적으로도 선진님들은 40대면 완숙된 모습으로, 교단의 중책을 맡아 책임있게 일하고 후진을 지도해왔다.
 늦게 출발된 덕에 10년은 늦어 공부한 시일에 짧고, 보은할 시간이 짧아 아쉽지만, 젊은 대세와 더불어 생활하니 마음도 젊고, 가능성도 많아 좋은점이 많다.
 그러나 내면으로나 외면으로나 성숙해 있어야 할 나이에 이르니 스스로의 부족이 더욱 안타깝지만,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 생각하며 부단한 노력 쉬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리라 여겨져, 앞으로 남아있을 시간들을 진급과 향상을 위한 시간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리하여 죽어갈 때에 열심히 살아노라고 조금더 부처의 길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했노라고 아쉬운 마음 없이, 청정일념의 보따리 챙겨 조용히 두눈 감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교무 ㆍ 교정원 공익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