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부처님을 시봉
할 무요, 할머니이

 5월의 청명함만큼이나 티 없는 손자들의 부름이 나를 반기고 50여년의 세월이, 빗어 올린 쪽 머리에 먹빛으로 감돌겠지, 하사한 복사꽃이 꿈동산의 이루고 청초한 수선화로 수를 놓은 무릉 보육원! 그곳 고사리들의 무럭무럭 자람은 하늘 높이 메아리 치리라. 굳이 원장님이라는 격식으로 불려지기를 원하지 않으리라.
 그런 존칭에 어울린 품위와 고상함으로 체통을 고수하고 싶지 않다. 천심을 함께 하고, 동심을 함께 나누는 심우가 되고 싶다. 배앓이 할 땐 할머니 손이 약손이고, 출출할 땐 할머니 쌈지 돈이 든든하고, 허전할 땐 할머니 구전동화(옛날 이야기)가 구수하다는, 손자 놈들의 흙 묻은 손에 이끌리고 싶다.
 정성이라는 단어와 대적공이라는 말씀을 아로새긴 초가지붕 움막 두서너 칸을 손수 지어 탄생가 옆 소담스런 초당에서 살고 싶다. 살구꽃과 아기 진달래가 모여 꽃 대궐을 이룬 을 즐겨 찾아가리라.
 쫀망쫀망 모여든 손자 놈들, 아주 옛날 옛날에, 처화라는 아이가 저기 저 마을이래 길룡리에 살았데요. 처화는 너희들처럼 키도 컸고 나이도 너희들과 같이 6살인데두 귀를 쫑긋 세우고 또렷또렷 쳐다보는 동안에 일상 시름한 일들이 사라질 것이다.
 언제였던가. 젊은 혈기로 뛰어들어 그저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면 되겠지 했다. 그러나, 그런 단순 논리에 동심이 상실된 그들의 가슴을 감동시킬 재간이 없었다. 순수한 발심이 오히려 짓밟히는 그 애들의 희유는 나를 좌절이라는 구덩이로 매장 시키곤 즐거워했다. 가깝고도 머언 그 아이들의 거리는 이해심리라는 잣대로만 줄여 갈 수가 없었다. 서로 사랑한다. 고맙습니다. 용서하세요.라는 말이 어설프고 낯설기만 한 그 아이들의 냉가슴을 봉공의 혈성 만으로 녹일 수 없었다. 단 한가지 내 무릎을 꿇고 성실이라는 눈높이를 맞추는 마음뿐이었다.
 어느덧 장성한 나의 아이들은 보은의 일터에서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있으리라. 저희들 철모르고 놀려준 골탕에 얼굴 붉히며 심경천으로 달려가 눈물 흘리던 나를, 이젠 어머님하며 찾아오리라. 간절히 원하옵건대 내 발길이멋진 화음으로 그 애들이 준비한 축 송은  구간도실 법인광장에 울려 퍼지리라. 잡초로 무성한 옛 자취는 사라지고 거대한 문화광장으로 그 위세를 세계만방에 떨치며, 빛날 손 영광 땅, 복될 손 영촌 마을 아니던가! 아들딸, 손자 손녀들과 마주하고, 영산 대학 후배들과 더불어서 한자리에 경축하니 경사로다 경사로다.
 24년전 탄생백주년 행사를 치르면서 오늘 이때 (원기 100년)를 맞이하여 각자의 초상을 그려보자던 꽃발심, 초발심도 잊지 못한다. 참으로 가슴이 들끓었던 구도의 정열을 구인 선진님께 오늘 다시금 이 자리를 빌어 고백 드려본다. 교단의 엄부이시자 이 회상 창립을 이룩해 놓으신 대종사님을 모시고 혜광의 두렷한 모습 품에 그리며 이렇게 한 생을 일구어 보았다. 교단의 자모이시자 이 회상 창립의 동업자이신 정산종법사님을 새기며 그 신성을 체 받고자 이렇게 한 생을 더듬어보았다.
 교단의 친형이시자 이 회상 창건의 계승자이신 대산종법사님을 뵈오며 그 덕을 담아 보고자 이렇게 한 생을 가꾸어 보았다. 그저 닮아보고자 쫓아 온 생이지만, 심경에 비춰진 삼독심 조각달만 떠오를 뿐이다. 후진님들에게는 감사, 감사할 뿐이다. 대회상 개벽의 상두소리가 1백년을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려왔다. 그 쇨 시방세계를 눈뜨게 하고 일체 생령을 인도하니 광대 무량한 낙원세계 아님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여러분들이 무릉도원의 주역들이다. 저희들도, 1백년전 앞서 괭이와 삽을 들고 지게를 지시며 엿밥을 드시던 선배님들께 한치의 부끄럼 없이 당당히 이 자리를 물러 설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인의 법생지요, 은생지!
 광활한 일원대도의 발생지!
 옥녀봉 구름이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정관평 옥토에 생명의 꽃을 피우는 봄소식이 오고 있으리라.
 할머니이 - 여기 미나리 있어
 어? 냉이 봐 쑥도 있어요.
 빨리 빨리와
 어느 새 밀집모사 쓴 촌노모가 되어 저 어린 대종사들을 보며 희망의 향기로운 들꽃 향을 맡으리라, 난 그렇게 원기 1백년대의 문을 신선한 설레임으로 사랑하는 이를 맞이하듯 조용히 열 것이다.
소광섭<영상대학 4년>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