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양현수교무<대표집필 원광대교수>
김학인 교무<중앙박물관장>
박원현교무<원광대교수>
이성전교무<원광여고 교사>
일원문화는 원불교적 정체성이 확립된 문화
주도문화로서 자정력 갖는 교

 개교백년대를 향하여
 눈앞에 다가선 다음세기의 개교백년 대를 향하여 원불교는 어떠한 문화풍토를 가꾸어 가고 있는가. 원불교인은 이제 이 사회를 개화할 창조적 인간상의 대명사이며, 교단은 사업사회이후의 세계사조를 주도할 청사진을 마련해 놓고 있고, 그런 위상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문화를 삶의 총체적인 표현양식이라 한다면, 물질문명의 이기 속에 이른바 전쟁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새 회상의 창립을 선포한 교당은 스스로의 위상을 확인하면서 독자적인 삶의 전형을 제시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지만, 구체적인 역사 세계의 문화의 통로를 거쳐 투영될 때 만인의 것이 된다. 그것이 제도 이념이다. 따라서 대종사의 제도이념이 널리 미친다는 말은 원불교 적인 삶의 양식이 만인의 문화로 수용됨을 뜻한다.
 어떤 문화는 결국 기존문화의 바탕 위에 태동함으로써 기존문화에 대한 대응양식으로 나타나게되는데, 그것은 오랜 동안 생명성을 갖고 발전할 때 비로소 그 위상이 달라진다. 유기체적인 성격을 띤 문화는 소생하는 단계에서 생명력을 잃을 때 대응문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지만, 대응 문화의 차원을 넘어설 때는 주도문화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원불교 문화는 기존문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기존문화를 어떻게 선도하고 있는가. 우리는 원불교문화라는 말을 곧잘 사용해 왔다. 그러나 원불교문화가 어떤 것이냐고 반문할 때 명확한 답을 주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원불교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했음을 말한다. 짧은 교단의 교단사를 통해 볼 때 우리는 아직 이것이다라는 실증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대응문화 내지 주변문화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가 부터 겸허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만 원불교문화가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 즉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천명될 구세경륜이라고 하면, 거기에는 대응의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주도문화 주류문화로서의 위용이 엿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대종사는 제도사업을 언제나 천하대사로 보았고, 그러기에 자신의 교법에 대하여 세계를 맡겨도 능히 다스릴 법으로 자부했던 것이다.
일원문화의 개념
 종래 우리는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문화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여왔다. 교화의 새로운 차원을 모색하기 위한 문화교화, 원불교 청년활동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원청 문화라고 부르짖고, 원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확인하는 원불교문화등의 용어가 그것이다. 교정원에는 문화부가 설치되고 , 중앙총부에 중앙문화원이 1979년(원기 64년)개설되었다. 시대화대중화생활화라는 앞서가는 교단모습을 문화라는 차원으로 집약시켜온 셈이다. 문화라는 의미 속에 교단의 고등종교 내지 세계종교로서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염원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용어로 일원문화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종사의 일원상 진리를 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원불교철학을 일원철학으로 이름해 오고 있는 것에 상당하는 개념으로 파악된다. 다른 집단의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것을 원불교 적이라 하거니와 원불교적 정체성이 확립된 문화를 일원문화라 불러 좋을 것이다.
 여기서 원불교 적이라는 말은 문화의 표현형식만 갖추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교리에 근거한 삶에서 농축되어 나타난 산물을 말한다. 일원문화란 일원의 진리에 바탕한 문화이다. 따라서 그것에는, 첫째 원불교 정신에 뿌리 하여야 하며, 둘째 원불교의 신앙수행을 통한 원불교인에 의한 표현이어야 하며, 셋째, 원불교 적인 표현양식을 수반해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한다.
 일원문화가 원불교문화의 코아(핵)이기 위해서는 깨달음에 바탕한 열린 혼의 문화이어야 한다. 다른 문화와의 접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상징, 즉 환경을 변화시키는 생명성을 간직해야 한다는 말이다. 퇴폐문화나 향락문화를 차단하고 원불교적 삶에 의한 보람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교화의 차원일 때 이는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국적인 혼과 맥
 문화의 영역에 대하여 우리는 우선 의식주를 중심한 물질물화와 관념 및 규범의 정신문화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문화의 영역 가운데서 관념문화는 철학이나 사상 그리고 문화의 향유방법 등을 포괄하며, 규범문화는 실천적인 도덕성 등을 포괄하게 된다.
 이들 문화의 총체적인 영역 안에서 이것은 원불교 적인 것이다라고 지칭할 만한 것들을 우리는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문학예술 등의 구체적인 전개에 있어서는 물론 일상의 생활문화에 이르기까지 원불교 적인 것을 헤아려 일원문화로 분류할 만한 것들이 어떤 것인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원불교의 신앙대상인 일원상이나 전무출신 상 내지 정녀 상을 말하며, 그 대표성은 사회적인지도 등에서 실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상징성으로 자리하기는 요원한 감이 없지 않다.
 어떻든 원불교 적인 문화의 창출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화의 시대성에 유의해 보면 금세기를 대표할 만한 건축물 하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바에 우리는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불교가 창출된 정황을 살펴보면, 20세기의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불법을 중심한 동양사상의 정수가 일원문화 속에 용해되어 나타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경직된 사고체계가 아니면서도 바탕이 된 구문화의 틀을 탈각시켜 나갈 때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리라는 것이다.
 마치 고려불교가 지향성을 상실했을 때 주자학이 생명력을 갖게되고, 조선유교문화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문물이 무분별하게 수용된 것과 같다. 그러나 결과는 한국의 전통적인 혼과 맥을 되살리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고 분열과 배타성으로 가치관의 혼란과 사상의 갈등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새로운 문화의 갈구가 여기에서 요청된 것이며, 이를 우리는 개벽이라는 역사적 전환의 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깨달음이라는 정신개벽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면 갈등과 혼란을 넘어서서 근원적으로 만나는 회통과 조화의 역사가 도래하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를 성비에서 뭇 성인이 모여 크게 이루었다(집군성이대성)는 관점이 여기서 제시된다.
 원불교와 일원문화
 이때 우리는 동양정신의 정수로서 계승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의 전통 속에서 소멸되고 마모되어 나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원불교적인 문화의 자양분을 여기서 제공받게 된다는 말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불교나 유교의 문화는 표현양식이 비교적 고착되어 있다. 따라서 불교적인 것과 비불교적인 요소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소는 결국 새로운 창출을 가져오는데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그에 비하여 원불교의 경우는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다. 표현영역이나 기법을 불문하고 다양한 창의성이 제한 받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는 물론 원불교문화, 즉 일원문화의 정형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며, 대응 문화의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어떻든 문화가 강제성이나 고의성을 때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면, 규격화를 서둘 필요가 없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시대를 향도하는 문화, 즉 주도문화로의 성장을 이해서는 따뜻한 애정과 함께 부단한 관심을 기울리 필요가 있다. 창의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의와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기관이나 교당의 건축양식에 있어서도 다양한 표출을 지켜보면서 이념과 여건에 합당한 기획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종종 우리교단이 얼마나 문화의지가 강한가를 반성해 보게 된다. 생활종교라는 특성은 있다고 하더라도, 교화의 장을 마련하는 사원건축 자체가 문화재를 창출해내게 되는 전통불교에 비하면, 우리의 문화의지는 매우 미약하게 생각되어 진다. 상징적인 건물이 신앙과 수행을 겸하면서 대중을 응집시키는 문화재가 되도록 하는 길은 없을까. 활자화되는 대중매체에 교단의 교화의지가 별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화가 반드시 어떤 채널을 통해 전달되고 응축된다는 원리에서 보면 매우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교단의 역사를 정리하는 입장에서도 우리가 경주할 초선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가 정성스럽게 모으고 정리하는 일은 교단역사의 보존운동이며, 동시에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가꾸어 가는 길이다. 우리의 역사는 교화 사이기 때문에 선인들의 (행화)는 우리의 현실에 커다란 생명으로 다가오게 된다. 사실 그러한 일만큼 원불교 적인 것이 없는 셈이다.
 문화풍토를 문화체질이라 한다. 결국 우리가 향유하는 할만큼의 문화를 우리가 지니고 있는 꼴이 된다. 교화의 장에서 지성의 샘이 메말라 버린다면, 영성의 고갈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수현상이 생기게 된다. 창조적 지성은 열린 혼에서 비롯된다. 열린 혼으로 우리의 전통사상과 원불교문화를 접목시켜 나갈 때 세계에 통하는 일원문화의 정초가 마련될 것이다.
 다만 문화풍토를 가꾸어 가는 입장에서는 교단의 의지가 지대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단초창기에 이웃의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굳굳하게 방언역사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종사의 투철한 안목을 대중이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원불교 적인 정서, 원불교 적인 신앙으로 살아가면서 자유로이 창출하는 문화 그것이 일원문화라면, 주도문화로서 자정력을 갖도록 까지 일사불란한 흐름을 견지하도록 가꾸어 가는 교단적 의지가 요청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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