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공부 표준하고 살아라
권장부의 삶에 긍지 심어 줘

 인생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이루어져 가는 삶은 아니다. 어제의 충만 감이 오늘에는 공허로움으로, 오늘의 고뇌가 내일의 행복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토회원으로 살아온 나의 40여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들이었고 고락의 반복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만나기 어려운 일원대도 회상과 인연이 되어 인과보응의 진리를 믿고 수행해온 내 생애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삶이다.
 나는 총부에서 가까운 군산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종교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교역자의 반려자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선배 언니의 중간 역할로 나는 정토회원이 되었다. 참으로 낯선 영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원기 36년 음력 9월, 결혼 후 처음으로 총부에 와 구조실에 계신 정산종사님을 뵙게 되었다. 나는 큰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았지만 정산종사님을 바로 뵈올 수가 없었다. 반가이 맞아주신 그 자비스런 모습에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조실 다락에서 정산종사님은 손수 홍시를 꺼내 주셨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홍시를 먹는데 너무 조심하다보니 오히려 홍시가 터져 흐르게 되었다.
 정산종사님은 이때 법문을 해 주셨다. 앞으로 살아가자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쁜 일도 있고 기쁘고 슬픈 일 등 많은 경계가 있게 되는데, 이 많은 경계를 당해서 일단은 멈추는 마음을 표준 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정산종사님의 이 법문을 오늘날까지 내 공부의 표준으로 삼고 살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일단은 멈추어 생각하고 취사하려는 것이 내 생활의 신조였고 삶의 지표였던 것이다.
 어쩌면 정산종사님께서는 나에게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경계가 있을 것을 예견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멈추라는 말씀의 뜻을 모라 어리둥절했는데 이를 아시고 바로 무슨 일이든지 할 때 멈추어서 하라는 것이다라고 부연해 주셔서 나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산종사님은 나의 시댁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김씨 집안은 보통 집안이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타원 김해운 시할머님에 대한 말씀도 해주시면서 나에게 결혼 잘 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교단에 대해서나 교리에 대해서 너무나 아는 것이 없었다. 결혼과 함께 입교를 하고 그 해 겨울 선에 참여한 나는 인과 보응의 진리와 불생불멸의 진리에 대한 법문을 받들게 되었다. 다라서 전무출신 아내로서의 생활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원불교 인으로서 점차 뿌리를 내려가게 되었고 첫딸 순경(중앙대교수)이를 낳았을 때, 아이를 데리고 정산종사님께 갔다. 한동안 애기를 바라보시다가 법명에 대한 풀이를 해주셨다.
 무임금이 나타났으니, 순임금의 경사로다.무임금이 나타났다는 것은 큰 댁 맏아들인 무현이를 뜻하시는 말씀이셨고 순임금 경사란 바로 순경이의 법명을 이렇게 의미 지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정산종사니은 해운 할머님에 대해서 여자이지만 여장군이다. 보통 할머니가 아니시다. 잘 받들어라하시며 화해리의 인연을 상기시켜 주였다.
 나는 한동안 시골살림살이에 지쳐 병이 나고 말았다. 총부 부근에 자리한 큰댁 형님(전타원 윤성규)에게로 와서 치료를 하게 되었다. 이대에도 정산종사님은 당시 시자인 범산님을 보내시어 살펴주셨다. 안정하고 요양하면 괜찮다. 낙망하지 말고 치료에 전념하라는 당부 말씀을 전해 주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챙겨주시는 따뜻함에 나는 한결 안심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정산종사님 같은 인물은 처음 뵈었다. 청명한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 같은 성안은 만물을 고루 비추셨고 중생의 온갖 고뇌를 풀어주셨던 것이다.
 때때로 정사종사님은 남자 전무출신 부인들의 모임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모임이 없지만 앞으로 모일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상호 친목과 공부심을 진작시키고 권장부로서 사명감을 일깨울 수 있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그 기초가 될 쌀 두가마를 하사해 주셨으며 모임의 이름을 정토회라고 명명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보리를 수확 할 때는 보리 한말, 쌀 농사지어서는 쌀을 한말씩 거두어 오늘의 정토회관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정사종사님은 신심이 돈독해야 한다. 마음 공부 잘하라, 전무출신 뒷바라지 잘 하라는 등의 말씀을 자주 해 주시면서 권장부로서의 긍지를 갖도록 촉구해 주셨다.
 나는 교역자의 생활을 아는 사람과 결혼한 전무출신은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백지상태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원망심도 많았다. 그러나 동선에 참여해 자업자득의 원리를 알고 비로소 감사로 돌리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훈련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만일 결혼 초 그런 선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오랫동안 원망심으로 시달렸을 것이다.
 내가 화해리에서 경타원 할머님을 모시고 살 때 할머님으로부터 정산종사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받들었다. 만국양반이라 부르게 된 내력이며 정산종사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다.
 생활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성현을 가까이 모시고 법문을 받들었던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그래서 정산종사님이 열반하였을 때 나는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보다도 더 많이 울었다. 두고두고 정산종사님의 가르침에 따르지 못한 나의 근기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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