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절실한 현실 속에
홀로 우뚝 높이 서서
6조 :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이 그 무엇인가.

  이 화두는 불가에서도 많이 쓰지만, 원불교에서 오히려 더 많이 쓴다. 소태산 대종사가 혈인 기도를 끝내고 처음 변산 월명암을 찾았을 때 이 화두가 벽에 걸려 있었다. 대각을 이룬 후 무슨 이치든지 한 생각을 넘기지 않고 환히 깨쳐졌으나, 이 화두는 즉석에서 밝아지지 않고 차 한잔을 마시며 천천히 궁글린 후에야 비로소 그 뜻이 떠올랐다고 전해 온다.
 (1)만법은 현상세계이다. 차별 있는 현상세계는 상대적으로 건설되어 있다. 하늘과 땅, 해와 달, 남자와 여자, 동물과 식물, 선과 악, 동쪽과 서쪽,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극락과 지옥 등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건설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세계, 상대관념을 떠나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세계요 만법귀일의 세계다. 1,700 화두가 그 표현은 각각이나 그 뜻을 결국 다 같은 하나인 것이다.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 상대적인 것을 넘어선 절대의 세계, 그것은 곧 우리의 본래 면목이요 일원상의 진리이다.
 똑같이 우리의 청정자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복잡하게 1,700공안을 내어놓았는가. 그것은 부처님의 대자대비심 대문이다. 사람마다 습관이 다르고 시절 인연이 달라서 어느 화두에 깨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만법귀일 일귀하처란 화두에 깨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불여만법위여자시심마란 화두에 번쩍 깨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일원상의 진리에 귀일 된다. 똑같은 일원상의진리이지만 정전의 표어에서, 일원상의 진리 장에서, 게송에서, 일원상서원문에서, 삼학팔조 사은사요에서,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또 대종경 교의품에서, 수행품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설명했다. 사람 따라서 일원상 서원문이나 게송에서 깨칠 수도 있고, 교의품이나 수행품에서 깨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경지에 도달한 큰 도인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떤 상대적 관계에서 살아간다. 부모자식스승제자선진후진남편아내 등 상대적 관계에 묶여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유아독존의 경지에 도달하면 이러한 상대적 관계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재물이나 권세에도 의지하지 않고, 부처님이나 경전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승이나 도반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부모님이나 형제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서서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도인을 의 도인이라 한다.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어떠한 것도 구하지 않고 홀로 높이 살아간다는 뜻이다. 또한 이러한 도인을 이라고 한다. 공부할 것 다하고 할 일을 다 마쳐서 따로이 더 공부할 것도 없고 더 해야 할 일도 없어서 세상에 가장 한가로운 도인이란 뜻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면 번뇌망상을 제거하려 하지도 않고 진실을 구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번뇌심이 잠자면 보리심이요 망상을 없애려는 마음이 도리어 큰 병통이요 번뇌임을 알기 때문이다. 거짓과 진실의 구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3) 세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동인은 할 일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큰 일을 하는 것이다. 하늘은 아무 말이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으나 무위이화로 만물을 살린다. 마찬가지로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도인은 현실세계를 멀리 떠나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절실한 현실 속에서 일체중생과 더불어 살되 조금도 섞이거나 물들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경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초연한 마음으로 살되, 시끌벅적한 사장바닥에서 흔적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대자대비의 천만방편을 쓰되 아무런 흔적도 없이, 신통묘용 대기대용의 조화를 부리되 보통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