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꼭대기에 떨어진 한 방울의 빗물은 땅속에 스며들고 바위틈을 지나 산골짜기의 조그마한 시냇물이 되고, 쉬지 않고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마침내는 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흐르는 과정에 있어서 맑은 물도 되고 황톳물도 되고, 곧게도 흐르고 굽게도 흐르며, 때로는 지푸라기 한 개도 피하고 때로는 바윗돌도 뚫는다. 인간의 역사도 이와 같다. 평화시대도 있고 전쟁시대도 있고 발전도하고 후퇴도 하면서 마침내는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고 하나의 인류로 만나게 된다.
 원불교신문사 25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원기 54년(1969) 3월 1일에 원불교신문사가 창립되었다. 당시 개교반백년 기념사업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교단적 필요성에 따라 창설한 것이다. 그해 6월 1일에 타블로이드판 4면의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격주간으로 4천5백부씩 발행한 것이다. 다시 4년의 세월이 흘러 원기 58년(1973) 6월 10일, 97호부터 신문판 4면으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로서는 큰 발전이었다. 다시 7년 6개월이 지난 원기 65년(1980) 12월 6일, 268호부터 격주간에서 순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고, 또 다시 9년이 지난 원기 74년(1989) 7월 7일 559호부터 주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창간된지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신문판 주간 4면 발행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그동안 원불교 신문사는 부대사업으로 해룡중학교에 교구 보내기 운동(원기 56년), 해외교포, 국군장병, 교도소 등에 신문 보내기 운동(원기 58년), 총부와 영산 성지에 나무심기운동(원기 60년), 인간회복을 위한 월례강좌실시(원기 60년), 해외와 교도소에 교서보내기운동(원기 60년)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중앙문화원 신축개원(원기 68년)에 적극 노력했고, 원불교신문신서 2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동안 몇 차례에 걸쳐 8면으로 발행했을 뿐, 겨우 4면 발행에 그치고 있다. 금년 3월부터는 매월 첫주 한차례씩 8면으로 증면 발행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매월 4회 16면에서 20면으로 증면하게 된 것이다. 다른 종단의 신문이나, 사회에서 평가해 주는 교단의 힘에 비추어서 현재의 원불교신문은 지나치게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교단의 모든 사업이 평지에 태산을 쌓듯 근검성실 검소절약으로 땀흘린 결과이듯이, 원불교신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의 교단현실에 본다면 다른 분야보다도 몇 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고 한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말을 새삼 떠올릴 필요도 없이, 현대사회에 있어서 신문의 역할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단의 경우는 이러한 인식이 너무나 미약하다. 교단의 지도자, 일선교무, 일반교도에 이르기까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원불교신문은 결코 주저하거나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도 회피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원불교신문이 25년의 세월에도 아직 강물 정도도 되지 못하고 시냇물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냇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꾸준히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바위도 뚫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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