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여자 정화단
한국사회의 새 여성상으로 정착
정결은 연화, 지조는 송죽같이

원불교 정녀, 비구니수녀와 같이 정녀는 한국 여성 성직자의 세 대명사의 하나이다. 정녀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여성상 또는 성직자 상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12년(1927)에 유공인 대우법을 발표하면서 교단 창립의 유공인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가 정남정녀로서 본교를 위하여 헌신 봉공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소태산 대종사는 평소에 정남정녀를 격려 권장하는 말씀을 자주 하였다. 정남정녀 사당에는 나도 못 들어간다 정녀들이 일생동안 남으로부터 비난하는 소리 듣지 않고 오롯 하게만 살아가면 항마위에 오른다고 한 말씀이 그것이다. 정산종사는 정남정녀의 친목단체로 정화단을 조직하라며 정결은 연화 같고 지조는 송죽 같으라격려하였다.
 이와 같이 교단초기부터 정남정녀의 중요성은 크게 강조되었다. 오늘날 정녀는 전체 출가교역자의 2/3에 해당하고 정남은 약 3%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녀는 교역자의 가장 큰 집결체로서 교단 발전의 거대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소태산 대종사 당대의 여자 제자 중에는 정녀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교역자가 증가하면서 이들은 대부분 정녀의 길을 걷게 되어 여자 교역자 = 정녀처럼 되어 여자 정화단은 자연스럽게 거대한 결집체를 이루게 되었다. 마침내 원기 45년(1960)에 이르러 여자 정화단이 창단되고, 친목단체로 출발하였으나 수행 정진과 교단 발전에 원동력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차츰 응집력과 결속력을 키워왔다.
 드디어 원기 59년(1974)에 이르러 여자 정화단 선서식을 가지고 일신의 영화를 버리고 세계정화에 앞장선 길잡이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이때 대산 종법사는 정화단의 도7개항을 밝혔다.
 (1)희생적 봉공으로 교단만대의 거울이 되고, 세계정화의 원천이 된다. (2)고결한 뜻으로 시방 세계를 두루 밝혀주는 태양이 되고, 순일한 공심으로 일체중생을 길러주는 바탕이 된다. (3)한 평생을 무아봉공하여 숙업을 청정히 하고 영겁대사를 해결하며 스승님의 일원대도로 천하를 불은화한다. (4)이 한 생을 특별히 대성원기대훈련기대보은기로 정하고 이 공부 이 사업에 끊임없이 대 적공한다. (5)일신의 세간 락을 돌려 전생령의 혜복 문로를 열어주고, 한 가정의 부귀영화를 돌려 전세계의 복지를 마련한다. (6)늘 스스로 본원을 반조하고 서로서로 권면하여 다 같이 불보살이 된다. (7)성불제중의 큰 원을 성취할 때까지 불석신명금욕난행희사만행의 불공으로 대 정진한다.
 이 때의 제1회 선서식에는 250여명이 참석했다. 이 때부터 여자정화단은 단 조직을 통해 상호 우의를 다지고 수행 정진에 더욱 노력하였다.
 다시 원기 60년(1975)에 30명, 62년(1977)에 45명이 선서하고, 이후로는 3년만에 1차씩 선서식을 가지게 되었다(이 때부터 정남도 같이 선서).
 원기 70년(1985)에는 정화단 창립 25주년 기념식을 갖게 되었다. 이 때 대산종법사는 이 날을 계기로 고결한 뜻과 순일한 공심으로 더욱 거듭나는 삶이 되어 우리회상의 영겁주인이 되고 일원대도의 영겁법자가 되라, 또한 2대 말까지 원정사를 배출시키는 선서와 단합의 시금석이 되어 개인가정국가세계의 대성역화 불사의 거룩한 기념탑이 되라고 격려하였다. 기념식과 아울러 기념음악회도 가졌고, 원불교 여성 70년사 <개벽의 일꾼>도 발행하였다. 이렇게 하여 여자정화단의 교단적 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 탄생 1백주년을 전후하여서는 비구니수녀와 함께 삼소 시회전삼소음악회등을 갖고 상호 교류와 우의를 돈독히 하기로 하였다.
 현재 여자정화단(700여명)은 해마다 총회 때에 총단회를 갖고, 해마다 단장 중앙훈련을 실시하며, 각 단별 모임을 갖는다. 오늘날 원불교 정녀는 원불교 교역자의 대명사처럼 한국사회에 널리 인식되고 있다.
 원기 7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서 정녀제도는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는 원불교 여자교역자는 정녀의 길을 걸어야만 하고 결혼은 자유의사에 맡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녀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서 결정해야 하고, 결혼하고서도 교역자의 길을 갈 수 있는 제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젊은 층에서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정녀에 비해서 정남은 그 수효가 워낙 적어서 비록 정화단은 결성되어 있으나 여자 정화단처럼 조직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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