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시대의 청운회-
늙은 사자처럼 움츠리고만 있을 것인가
가능한 일부터 내가 먼저 하자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의 개혁시대를 맞아 잠시도 우리를 뉴스에서 귀를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즈음이다.
 가히 혁명적 대변혁의 시대를 맞아 과연 교단은, 교도들은 아니 우리 청운회는 얼마나 개혁에 발맞추어 가고 있을까. 시대의 요청인 이 도도한 개혁의 큰 물결에 함께 흐르지 않는다면 역사는 우리를 외면할는지도 모른다. 고인 물은 썩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는 많은 분들이 교단을 사랑하는 충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그 대안과 방법을 끊임없이 제시하여 왔다.
 예컨대, 신앙의 대상과 교조의 호칭 변경 문제, 총부를 서울로 이전하는 문제, 대교구제와 자치제 실시, 교도회의 결성, 각종 제도의 개혁, 남자 교역자의 복장 제정, 교역자의 인사 쇄신, 각종 의식의 개혁, 교역자의 용금, 재가 교도의 교정 참여, 세대 전무출신 제도의 실시 등등 끝도 없이 이어졌던 새로운 발상과 과감한 제안들이 많았지만 이렇다할 해답을 얻지 못한 상태다.
 청운인이여! 답답하지 않으신가? 현실의 두꺼운 벽을 과감히 쳐부수고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며칠전 국가을 위한 조찬 기도회에서 대통령의 뼈아픈 지적에 개신교 쪽에서는 성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포함한 자성의 몸부림이 한창인 모양이다. 또한 5.18 전야 TV 대담에 응함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가 계속해서 쇄신을 해야 종교로서의 역할을 다한다며, 천주교의 쇄신을 부르짖고 있다. 성철 스님은 석탄일 법어에 행복 다가오는 소리 들린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자며 역시 변화를 강조하셨다.
 작년 여름부터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교단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거듭해 왔다. 필자의 정성이나 무게가 모자랐던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 하도 답답하여 이 일련의 문제들을 청운회 주최의 토론회라도 벌여 여론을 종합, 총부에 건의하고자 하였더니 찬반이 엇갈려 지금까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주 전무출신 제1호를 서원한 법명이 원성만, 본명이 아스타클라비타라고 하는 미국 여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주일간의 짧은 방문이지만, 원불교의 곳곳을 돌아보고 놀라움과 함께 충고와 비판 또한 서슴치 않는다. 한 마디로 교화가 침체기에 들어선 것 같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맨투맨의 교화방식 보다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량교화의 시대를 뛰어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뼈를 깎는 자정이나 의식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어찌하면 좋을까?
 첫째, 문제를 제기하자. 지금까지 거론되어 온 교당의 문제점들과 바람직한 방향들을 총망라하여, 이를 취합, 청운인의 명의로 교단에 제출하자.
 둘째, 여론을 수렴하자. 문제별분야별 개혁 대상을 청운연합회나 지방 청운회 주최로 공청회나 토론회세미나 등을 열어 여론을 수렵, 합의를 도출하고 그 결과를 교단에 건의하자.
 셋째, 가능한 일부터 하자. 수 많은 욕구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길이 막히면 수월스럽게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총부를 한꺼번에 서울로 옮길 수 없다면 우선 서울사무소를 강화, 각부의 인원을 가능한 한 서울에 상주케 하고, 또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량교화를 원한다면 문화부를 서울로 옮기거나, 최소한 월간 원광이나 원불교신문의 특파원을 서울에 주재시켜 전국 내지는 세계화에 대응케 하는 일 등이다.
 변혁을 두려워하지 말자. 변화를 두려워하는 집단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나의 교법 가운데 일원을 종지로 한 교리의 대 강령인 삼학팔조와 사은 등은 어느 시대 어는 국가를 막론하고 다시 변경할 수 없으나, 그 밖의 세목이나 제도는 그 시대와 그 국가에 적당하도록 혹 변경 할 수도 있나니라.하고 부촉 하셨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늙은 사자처럼 움츠리고 있는 모습은 새 시대의 새 종교, 패기 만만한 원불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청운인이여! 일어서라 그래도 새로운 바람을 불려야 한 다. 신바람이다. 개혁의 세찬 태풍이다. 교단 내에서 무게를 지니고 개혁을 주도할 세력은 청운인 밖에 없다. 청운인 이야 말로 방죽을 맑히는 생수요, 교단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는 혈심의 대인들이기 때문이다. 개혁시대의 청운회가 할 역할,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뛰어드는 일이리라.
<서울청운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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