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맛과 향의 발효식품, 한과

다양한 외식(外食)문화의 유입으로 전통음식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 한과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식공간(食空間)의 시선을 가정에서 상업적인 육성으로, 한과의 다양화와 멋스러운 빛깔의 예술로 승화시키며 대중의 맛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한과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식문화를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과의 기원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과자를 한과류(韓果類)라고 한다. 본래는 생과일과 비교해서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라는 뜻에서 조과류(造果類) 또는 과정류라고 하고, 우리말로 과줄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외래과자와 구별하기 위해 한과(韓果)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중국 한대(漢代)에서 들어왔다 하여 한과라고도 불리웠다.

삼국시대에는 과자에 관한 구체적 문헌 기록을 확인할 수 없지만 <삼국유사> 가락국기 수로왕조에 과(果)가 제수로서 처음 나오고 신문왕 3년(638)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술, 장, 꿀, 기름, 메주 등이 기록되어 있어 이미 이 시대에 과자가 만들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불교의 영향으로 유밀과가 발달하게 되는데 충렬왕 22년(1296년)에 왕이 세자의 혼인식에 참석하기 위해 원나라에 갔을 때 혼인식의 연회에 본국에서 가져간 유밀과를 차려 원나라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서 원나라에서는 유밀과를 '고려병(高麗餠)'이라 하여 즐겨 찾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한과가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룬 시대로 기록되어 있다. 한과의 사용은 궁중에서는 왕손의 가례, 왕·왕비·왕대비의 사순(四旬40세), 오순(50세), 망오(望五41세), 망육(望六·51세), 회갑 등을 축하하거나 존호(尊號) 받을 때, 외국 사신 영접 시에 또는 왕의 윤허(允許)를 얻어 잔치를 열 때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민들의 통과의례를 위한 상차림의 필수품으로 성행했으며, 한때 '한과금지령'이 내려져 헌수(獻壽), 혼인, 제향(祭享) 이외에 한과를 사용하는 사람은 곤장을 맞도록 규정할 정도로 과다 사용되기도 했다.


일상 속에서의 한과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명절과 절기에 맞추어 다양한 한과를 만들어 먹었다. 제비가 온다는 삼짇날에 우환을 없애고 소원성취를 비는 산제(山祭)를 올리는데 오미자편(五味子片)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또 정초 차림상에 올려지는 음식과 세배 손님들에게 내는 음식을 모두 '세찬'이라고 하는데 정월 세찬에는 유과, 엿강정, 약과, 다식, 숙실과, 정과, 곶감쌈 등 과자류가 다양하게 차려진다.

특히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오색강정이 있는데 이것은 설날과 봄철에 일반 가정의 제물로 실과행렬(實果行列)에 들며 세찬으로 손님을 접대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고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강정 속에 벼슬의 품계를 적은 종이를 넣어 운세를 점치기도 하고, 강정을 튀길 때 부풀어 오르는 강정은 누에고치처럼 생겼다 하여 일년 내내 운이 번창하고 누에가 실을 뽑듯 길(吉)하라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조리법에 따른 한과 분류

우리의 전통색은 청(靑)-동방·목성, 적(赤)-남방·화성, 황(黃)-중앙·토성, 백(白)-서방·금성, 흑(黑)-북방·수성으로 의식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민족의 색으로 자리잡았다.

한과도 이와 관련하여 댓잎, 잣, 대추, 쑥, 흑쌀, 흑임자, 찹쌀, 녹차, 생강, 호박 등 다양한 오방색 천연재료를 쓰면서 발전했는데 오색강정은 송화, 승검초, 홍세건반, 백세건반, 흑임자 강정 등이 대표 색깔로 불린다.

한과는 만드는 법에 따라 기름에 지지는 과자, 기름에 튀기는 과자, 판에 찍어내는 과자, 조리는 과자, 엿에 버무리는 과자, 고는 과자 등 8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유밀과류는 곡물가루에 꿀과 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만들어 기름에 지진 다음 다시 즙청한다.
유과류는 흔히 강정이라고 하는데 술을 친 찹쌀가루 반죽을 쪄서 자른 뒤 말린 다음, 기름에 튀겨 고물을 묻힌 것을 말한다.

날로 먹을 수 있는 흰깨, 검은깨, 찹쌀, 송화, 녹두녹말, 오미자 등을 가루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서 기하 문양 등 양각으로 나타낸 것을 다식류라 한다.

또 정과류는 식물의 뿌리나 줄기 또는 열매를 살짝 데쳐 조직을 연하게 한 다음 설탕물이나 꿀 또는 조청에 조린 것이며, 숙실과류는 과일을 익혀 꿀에 조린 과로 초류와 난류로 나뉜다.

과편류는 과일즙이나 과일을 삶아 거른 물에 설탕이나 꿀을 넣고 조려 엉기게 한 다음 그릇에 식혀서 편으로 썬 것이다.

견과류나 곡식을 볶거나 그대로 조청 또는 엿물에 버무려 서로 붙게 한 다음 반대기를 지어서 약간 굳었을 때 썬 과자를 엿강정류라 하며, 엿류는 전분 또는 전분을 함유한 원료를 엿기름으로 당화시킨 당과로 엿과 조청이 여기에 속한다.

전통의례 속의 한과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는 중요한 혼례에 약과, 요화과(蓼花果), 숙실과, 정과, 다식 등을 올렸다. 축·복·수 등의 길상문자를 넣고 색상을 조화시키면서 높게는 60cm까지 원통형으로 탑을 쌓듯 올려놓았다.

유밀과는 납폐음식(納幣飮食)으로 사용되었고, 신행(新行:새색시가 사흘 만에 시댁으로 가는 풍속)의 이바지음식으로 유과를 담아 보내곤 했다.

제례 상차림은 유밀과를 많이 진설했는데, 불교의 전성기였던 고려시대에는 살생 금지로 생선이나 고기류 대신 유밀과가 중요한 제향 음식으로 발전한 것이 전통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회갑에도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한과다. 한과로는 약과, 만두과, 숙실과, 홍·백요화과, 갖은 정과류와 오색 다식으로 연회의 화려함을 장식한다. 또한 궁중의례나 불교의례에서도 약과와 유과, 차와 다식을 올려 그 날의 의미를 기렸다.

30년 동안 한과를 만들어 온 담양한과 아루화 식품명인 박순애 대표이사(창평교당)는 "전통한과와 현재의 한과는 만드는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다른 면이 있다면 건강과 영양을 중시한 기능성 한과의 출시와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화 공정, 그리고 세련된 포장 디자인과 먹기에 좋은 한과 모양의 다양화를 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효식품인 한과에 대해 박 대표이사는 "한과는 찹쌀을 15일 이상 물 속에 불려(골려) 밀가루처럼 흐느적 할 정도로 발효시켜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면서 "담양의 댓잎, 백련초, 치자, 단호박, 뽕잎, 검정쌀 등을 이용해 고운 빛깔을 내며 담양한과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자부심이 가득하다.

이와 관련 담양한과는 지역의 농산물 소비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한국의 최대 한과회사로 중국, 일본, 미국에 많은 물량을 수출하는 등 한과의 세계화에 정성을 쏟고 있다.

이처럼 전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대의 맛과 멋을 살린 한과는 서양의 양과에 비해 만드는 방법이 훨씬 다양하고 저장성도 높으며, 팽창제·보존제 등의 화학첨가물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순수 자연식이자 건강식품으로 전통의 맛있는 빛깔을 내며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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