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 신앙수기<14>
새바람의 주역
교화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개혁의 물결에 과감히 뛰어 들자

 지난 3월 26일, 27일 양일간 부산청운회의 새삶 훈련에 강사로 다녀왔다. 몇 년 동안을 부산청운회가 지리멸렬되다시피 하였다가 이제야 비로소 김수성 회장을 비롯한 동지들이 눈물겨운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부산 서부교구에서는 3년째 교화중흥 결의대회를 갖고 3교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교화 현상은 오히려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작년 5월인가, 여의도교당을 미국 샌디에고 교당의 박성기 교무님의 전무출신을 지망한다는 미국여성 아스타글라비타(법명 원성만)양과 함께 방문했다. 일주일간을 원불교 곳곳을 돌아보고는, 원불교는 신생종교 답지 않게 상당히 노쇠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가장 젊고 패기만만해야 할 원불교가 늙어 보인다는 이방인의 이 한마디, 우리는 겸허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간 각 교구나 교당의 초청을 받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우리의 교화 현실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농촌은 농촌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교화의 침체를 지나 한계에 이르렀다는 자괴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얼마 전 총부 어떤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불교의 교화가 소태산 대종사 탄생백주년행사 때 피크를 이루더니, 그 다음 해에 입교 율이 무려 45%가 떨어졌고, 법회 출석률도 35%나 떨어졌으며, 그 이후로도 하향 추세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일반 사회나 기업조직 같았으면 벌써 무슨 일이 나도 크게 났어야 할 터이네, 우리 교단에서는 크나 큰 반응이 없다.
 최근 유행을 몰고 온 삼성의 이건희 회장 신드롬이라는 것을 보라, 살아남기 위해서 아내와 자식을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 절규를, 또한 최근 들어 우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던 조계종 사태는 우리가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할 심각한 문제이다.
 그간 나는 원불교신문이나 원광, 아니면 강연을 통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교단의 변혁을 끊임없이 소리쳐 왔다. 그러나 나의 이런 외침은 한탄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우리 교단은 변화가 필요없을 정도로 잘 되어 가는지, 아니면 개혁할 의지도, 그럴 힘도 없는 것인지 실로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기성 종교를 개혁한 종교가 원불교 아닌가. 지금 이 시대는 변화와 개혁을 통한 무한 경쟁에 돌입해 있다.
시대가 종교라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이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에 함께 뛰어드는 길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는 인적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래야 교단에 새로운 기풍이 일기 때문이다. 신풍 그 자체가 활력 아닌가.
 둘째, 제도개혁을 이룩해야 한다. 내년부터 대교구제를 시행한다고는 하나 충분치 않다. 예컨대 순수 재가 교도회를 결성하여 전문화된 재가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물적 개혁이다. 교단 재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이 재가의 검증을 거칠 때 아마도 더 큰 참여와 호응이 뒤따를 것으로 믿는다.
 넷째, 의식개혁이다.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이 보수에 안주해 있는 한 역사는 우리를 외면 할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새 시대의 새 종교 원불교가 교조의 개혁 정신은 퇴색되어 도리어 우리가 개혁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면, 저 높은 도솔천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슴은 도대체 얼마나 미어지실까.
 나는 원불교를 사랑한다. 우리 원불교가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이상하신 낙원의 꽃을 피워 가는데 미약하나마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것이 없다. 언제까지니 신풍을 몰고 다니는 주역이 될 것이다.
 <교도보은동산 사무국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