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삼각형이 훈춘 경신·선봉·쁘시예트를 잇는 소삼각다국가 경제특별구. 큰 삼각형은 연길·청진·블라디보스톡을 잇는 대삼각다국가 경제특별구이다. 원불교 동북아 교화전진기지 예정지는 훈춘 경신지역에 위치해 있다

3가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번 방문에 동행하면서 기자는 3가지를 눈과 몸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첫째, 북경 연길 상해 훈춘 등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중국교화의 현장과 이를통한 북한교화, 나아가 통일의 가능성을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공산주의가 붕괴된 상황에서 이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의 사상적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통일과 북한교화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특히 금삼각주로 각광받고 있는 훈춘지역에 힘을 쏟고있는 박청수 교무의 구상이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조명해보자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라는 울타리를 넘어 대륙의 풍광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대륙을 질주하던 고구려인의 기상과 북간도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독립운동의 현장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셋째, 백두산 등정을 통해 수행과정에서 내린 나의 생각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훈춘·파주·북경에 통일대비 북한교화 위한 원대한 포석 놓아

은혜공사서 생산한 된장, 북한에 공급해 교화의 細根 심어가겠다

돌고돌아 도착한 훈춘

8월24일 오후 1시50분 북경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북경을 거쳐 연길공항에 내린 것은 7시20분. 서울서 북경보다 북경서 연길이 더 멀었다. 연변은 길림성내 동부에 위치한 조선족자치주를 말한다. 6개시·2개현으로 구성돼 있으며 연길이 州都다. 중국내 조선족 인구는 218만. 이 가운데 연변에 87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다시 훈춘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훈춘교화개척지에 도착하니 밤10시가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29개 트렁크에는 학생들에게 줄 선물들이 가득했다. 북한동포에게 보낼 500만원 상당의 의약품과 학용품, 된장 등을 용도에 맞게 분류하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밖은 칠흙같은 어둠 뿐이었다.

박청수 교무가 左山종법사에게 「은혜임목유한공사 기업법인 허가서」를 올리고 있다. 이 허가서는 2018년까지 훈춘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마련과 함께 된장공장등을 통해 북한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 삼각주 훈춘 경신진

다음날 아침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훈춘은 60년대 말 한국의 소도시를 보는 듯하다. 우마차가 다니고 자전거를 개조한 2인승 인력거, 티코만한 택시 등이 한가로이 다니고 있었다. 대륙의 신선한 바람은 한국의 초가을 날씨같다.

훈춘교화개척지는 아파트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은 기존종교는 인정하지만 외국에서 새로 들어오는 종교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훈춘교화개척지도 외부적으로는 간판도 걸수 없는 상황이다. 양세정·이시은 교무가 기도생활과 봉사활동으로 앞길을 모색하고 있다.

미니버스를 타고 금삼각주라 불리는 경신진으로 갔다. 이곳은 러시아·중국·북한의 경계지역으로 「닭이 울어도 세나라에서 다 들린다」고 할 정도로 인접해 있다. 유엔개발계획은 1991년 이러한 지리적특성에 주목, 중국의 훈춘 경신·북한의 선봉·러시아의 쁘시예트를 소삼각다국가 경제특별구로 선정했고, 2010년까지는 중국 연길, 북한 청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잇는 대삼각다국가경제특별구로 확대, 이곳을 홍콩과 같은 동북아시아의 중계무역항으로 발전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되면 경신은 인구50만의 신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특히 항구가 없는 중국은 동해로 나아가는 해상실크로드의 꿈을 갖고 이곳의 개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훈춘과 경신, 북한을 잇는 도로와 철도가 한창 개설돼 곧 변화가 가시화 될 것으로 보였다.

훈춘은 북한의 후문 빗장이 열린 곳

박교무가 훈춘지역에 주목한 것은 1995년 8월 범종단 남북교류추진위가 훈춘에서 개최한 종교인대회에 참석하면서부터. 1994년 평양교구장 임명을 받고 북한교화의 돌파구 마련을 화두로 삼고있던 박교무에게 이곳은 「북한의 후문 빗장이 열린 곳」이라는 영감을 주어 박교무로 하여금 장차 훈춘을 통해 북한교화를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다. 이때 박영숙 훈춘 부시장과 인연이 돼 경신희망소학교 교사건립에 동참, 3천만원을 지원했고 3년간 1백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등 교류를 시작했다.

그후 박교무의 행보는 북한교화를 위한 다각도의 통로를 모색하는 일에 집중됐다. 훈춘 장애인특수학교 건립, 조선족 대동발전기금으로 장고 100개 보급, 연변대학 도서8천여권 보내기운동 등 교육 복지 문화 3방면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

더욱이 1995년 북한이 홍수피해를 입자 훈춘지역을 통해 북한동포를 도왔다. 그 액수만 1억2백60만원이 넘는다.

한편으로는 북한교화를 대비, 북경교당 파주교당을 지원했고 훈춘지역에 2명의 교무를 파견했으며 러시아 연해주 한인촌 건설지원을 하면서 이곳에도 교역자를 파견할 계획을 세우는 등 원대한 포석을 놓았다.

박교무는 『주위에서 되지도 않는 일을 왜하느냐고 했을때 左山종법사님께서 일찍 준비해야 한다며 힘을 밀어주신 것이 큰 힘이 됐다』며 『러시아 한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일원대도를 전할 교역자가 있으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동북아 교화전진기지

5천평 확보

우리는 박청수 교무가 경신진 당국으로부터 확보한 부지를 둘러보았다. 이 부지는 경신소학교 건립에 끼친 보답으로 경신진에서 제공한 것이다. 경신중학교 옆 야산 옥수수밭에 자리잡은 5천평의 땅. 우리는 이곳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독일가문비나무 한그루를 심고 박청수 교무의 주례로 기도식을 거행했다. 박교무는 『이곳이 평양교구의 대행기관으로, 나아가 동북아교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한다』고 기도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성가 「원하옵니다」가 간절하게 울려퍼졌다.

이어 경신희망소학교를 방문했다.

이 학교는 경신진의 14개 마을 소학교를 통합해 세운 중심학교로 413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도열해서 우리 일행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날 박교무는 시청각교육 시설비 1천만원과 우리말 도서 5백권과 학용품 등 선물을 전달했다.

은혜공사 인가와 된장공장 설립

훈춘에 교당을 신설하고 5천평 부지도 제공받았지만 기업법인인가를 받아야 법적으로 부지도 등기할 수 있었다. 교무들도 방문비자로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그만큼 법인인가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였다. 계속 불가하다는 연락만 왔다. 이것이 안되면 철수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박교무는 법인절을 한달 앞둔 7월21일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8월21일 법인기도 때는 탈진된 몸으로 울면서 30여분간 법신불과 대종사님을 불렀다. 교도들도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그렇게 기도를 마친 21일 법인절 밤, 훈춘 박영숙 부시장으로부터 마침내 「훈춘은혜임목유한공사」인가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법인운영기간은 2018년까지 20년간. 이에따라 양세정·이시은 교무도 10월중으로 거류민증을 받게된다. 거류민증이 있으면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권하교 너머에 월~금 5일동안 서는 북한장에도 다녀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떻게 북한교화의 물꼬를 틀 것인가? 박교무는 작년 11월에 북한이 된장·간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간장 2만7천리터를 두 컨테이너에 담아 북한에 보낸바 있다. 「그래! 경신에 된장공장을 설립, 북한주민들에게 공급해주자. 된장·간장으로 북한교화의 細根을 심자」. 이를 위해 이미 훈춘에 아파트를 마련해놓고 교역자를 파견, 된장·간장을 생산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훈춘장애특수교육학교 개교식

오후2시 훈춘장애특수학교 개교식에 참석했다. 「박청수 어머니를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우리를 맞는다. 훈춘장애특수학교는 박교무가 8천만원과 미화 1천달러를 지원한 것을 바탕으로 학교건물을 신축, 개교하는 학교이다. 박경희 교장을 비롯한 조선족 여성들의 씩씩하고 활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교무는 『우리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앞으로도 강물처럼 흐를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열린 부채춤 축하공연 때 박교무는 퇴직여교사가무단과 함께 춤을 추어 분위기를 한층 돋구었다.

비바람, 우박 속에 치러진 백두산통일염원기원식

다음날 4시50분 우리는 백두산을 향해 떠났다. 연길에서 버스로 5시간이나 걸렸다. 비옷을 준비하고 천지 밑에까지 지프를 타고 올라갔다. 천지까지는 5분거리.

하지만 천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뜻 천지물이 보이다가 사라졌다. 세찬 비바람도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비바람 속에 치러진 통일염원기원식. 『중국 훈춘을 통해 북한교화가 반드시 이루어지고 나아가 동북아교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또 우리가 하는 일이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되어 반드시 남북통일이 되게 하소서』 박교무의 목소리는 비바람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다. 「대종사찬송가」를 부르는 일행의 목도 메어왔고 박교무의 얼굴에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비는 우박으로 변했고 목탁을 잡은 박교무의 손은 꽁꽁 굳어갔지만 만세삼창은 북녘을 향해 멀리 퍼져갔다. 원불교만세 북한교화만세 남북통일만세.

나는 천지를 이고있는 백두산이야말로 수승화강을 보여주는 영적인 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백두산 천지를 두발로 딛고 대륙을 향해 용틀임을 하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항일운동의 요람지인 용정과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대성중학을 들렀다. 비암산 일송정과 말달리던 해란강을 바라보는 감회는 지금도 가슴을 훈더히 적시운다.

북한교화를 위한 간절한 염원, 백두산 통일염원기원식.

대중의 심금 울린 연변대 강연

28일 오전11시, 박교무는 강남교당이 연변대 여성문제연구소에 기증한 도서8천여권을 연변대 총장에게 전달했다. 오후2시 연변대 본관4층 강당에서 「삶의 지혜」라는 주제로 열린강연에는 연변대 교수, 학생과 여성지도자 등 2백여명이 참여했다. 1시간30분동안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박교무는 자신의 출가동기와 지난 30년동안 세계 36개국과 인연을 맺고 도와온 활동을 재미있게 소개,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박교무는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온 강남교당 교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방송제작팀들도 『참으로 극적이었다』고 감탄했다. 이날 강연은 연변텔레비전에도 방영됐다.

중국교화의 가능성

기자는 관광가이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중국을 방문한 소감을 묻길래 나는 『조선족들이 중국정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문화의 힘이 대단한 것 같다. 공산주의가 중국에서 꽃을 피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하면서 『중국정부의 자치정책, 개방화정책 등의 성공으로 인민들의 지지도가 높다』고 말했다. 원불교의 정착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는 『새로 들어오는 외래종교는 인정하지 않지만 일정한 세력이 형성되면 인정하는 것이 중국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북한교화와 통일의 물꼬가 될 것이며, 나아가 불일이 끊어진 중국에 불법을 다시 굴려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더불어 광활한 중국대륙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의 역사인식과 사고가 폭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음부공사의 판결이 난 것을 대행할 뿐이다』 『훈춘장의 1막은 끝났다. 이제 북한장 보러가자』고 말한 박교무와 동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향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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