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鼎山종사와 영산성지」 고증모임, 左山종법사 임석
7인先進, 영산학원 시절 등 초기교단 성지모습 회고

「정산종사와 영산성지」 고증모임이 지난 22일 영산성지 대각전에서 左山종법사 임석하에 7인선진의 회고담으로 열렸다.

정산종사 탄생백주년 기념사업이 재가 출가 전교도의 합심합력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성주성지는 물론 영산성지에서도 정산종사 추모사업의 열기가 일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정산종사와 영산성지」란 주제의 추모·고증모임이 지난 22일 오후 1시30분 영산성지 대각전에서 총부 영산사무소(소장 이종명)와 영산원불교대학교(총장 김복환) 주관으로 열려 영산성지와 관련된 정산종사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기여하게 됐다.

이날 추모·고증모임은 영산대학생 훈증훈련차 영산성지에 주석하고 있던 左山종법사, 용타원 서대인 종사, 유기현 사적 및 유물관리위원장 등이 함께한 가운데 김대관·전이창·박은국·송영봉·신제근·송순봉·이선우 교무등 7인선진이 추모담을 했으며, 영산대 학생과 교직원, 영광교구 교무들이 참석해 추모열기를 더했다.

「억만년 거룩한 땅 영산성지!」, 「우리 회상의 법모 개벽계성 정산종사」란 슬로건 아래 방길튼 교무(총부 영산사무소)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모임에서는 아우인 主山 宋道性종사와 더불어 서로 교대하면서 영광지부장·영산학원장으로서 성지건설과 초기교단 인재양성의 중임을 수행한 鼎山 宋奎종사의 성자적 행적과 인품이 추모담으로 인해 드러났다.

정산종사는 원기3년(1918) 봄, 정읍 화해리에서 소태산 대종사와 제우한 후 그해 7월 영산성지로 와서 대종사 법하에 입문하고 스승의 명에 따라 8인 동지와 더불어 법인성사를 이루었다.

이어 정산종사는 변산에서의 제법과 원기9년(1924) 익산총부 건설에 보필의 역할을 다한 후 원기 13년부터 5년간 영광 교무부장으로, 원기 22년부터 5년간 다시 영광지부장으로서 성지건설과 후진육성에 심혈을 경주한 후 원기27년(1942), 대종사의 명에 따라 총부에 돌아와 보필의 도를 다했다.

원기28년(1943), 대종사 열반 후 종법사 위에 오른 정산종사는 달본명근·교재정비·기관확립·정교동심의 4대 경륜으로 교단 전반의 기초를 다졌다.

원기 41년(1956)에는 영산성지 정관평 재방언공사를 착수케하여 성지의 경제를 튼튼히 하였다.

영산학원 출신으로 전무출신한 향타원 박은국 종사, 예타원 전이창 종사 등은 정산종사는 慈悲佛로서 지금의 영산대학교 본부건물 주변에 학원육영답을 만들어 사과나무를 심는 것을 비롯, 후진을 양성하는 육영사업에 특별한 정성을 쏟는 등 교육자로서도 높이 숭앙받을 성자라고 추모했다.

또한 이날 추모·고증인들은 구산 송벽조·준타원 이운외 대희사와 중타원 여청운사모 등 정산종사 가족의 지극한 신성과 무사무욕한 공심, 大人다운 풍모등 불보살로서의 인품을 증언했다.

특히 정산종사의 두딸로 영산성지에서 태어나 성장한 승타원 송영봉·태타원 송순봉교무는 어린시절 영산성지의 이모저모와 가족들의 간고하지만 법열에 찬 생활상, 「衆人의 아버님」으로서 公心뿐이셨던 정산종사의 심법과 처사를 소개해 참석한 대중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대각전에서의 제1부 모임에 이어 대중들은 영산원 경내를 돌며, 고증인들로부터 대각전 입구에 있었다는 남자학원실, 영산원(구간도실 이전건물)의 옛구조, 영산원 앞에 있던 건물의 구조 및 용도, 제2방언공사 추진 사무실, 영산학원실(선방)의 용도와 일화, 옥녀봉 구간도실 후록 정산종사 토굴터 등에 관해 고증했다.

이날의 고증내용들은 총부영산사무소와 영산원불교대학교 관계 연구진들이 체계적으로 정리, 고증인들과 여타 생존해 있는 초기교단 선진들의 검증을 거쳐 정확한 기록을 지상에 발표할 것으로 기대한다.

송인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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