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행복 비결은 원불교죠!"

신앙으로 단련된 부부, 일원가정 열다
부모의 신앙, 자녀들에게도 이어진다

봄은 늘 기분 좋은 바람과 기대를 하게 되는 계절이다. 속깊은 신앙생활로 교도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여수교당 장유은(56·호적명 강수)·정호인(52) 부부교도를 찾아가는 길목에도 봄은 시작되고 있었다.

최근 장 교도는 가진 재능을 나누고, 그 안에서 삶의 가치와 즐거움을 찾고자 개인병원을 정리하고 '동인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어르신들 건강에 힘쓰고 있다. 장 교도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진료실을 방문했을 때, 마침 그의 아내인 정 교도가 자연스럽게 남편의 흰 가운을 받아 걸며 퇴근을 돕고 있었다. 아내의 소리 없는 내조는 26년째 한결같다고 장 교도가 넌지시 부부애를 과시했다.

"23년간 병원을 운영할 때도 저는 진료만 했어요. 그밖의 일은 모두 아내가 도맡아 했죠. 다행히 가정에서도 자녀교육이며 교법에 바탕한 집안애경사, 신앙생활에 이르기까지 아내와 뜻이 잘 맞았어요."

물론 이들 부부가 완벽한 일원가정을 이루기까지는 숱한 고비도 있었다며 그만의 뚝심으로 고비를 넘긴 이야기를 꺼냈다.

"의과대학시절, 큰형은 선후배들까지 동원하며 그를 선교하기 위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토요일마다 숙소로 찾아왔어요. 6년간 꿈쩍도 안하자 나중에는 저한테 '지독하다'고 그러대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으로 버텼나 싶어요."

철모르던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여수교당에서 입교를 했다는 그는 "자아가 형성되고 신앙의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지기까지는 어린이법회와 학생법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교회에 끌려가지 않은 원동력은 신앙으로 단련된 학창시절이 있었다"고 여수교당 제8대 학생회 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학생회원들이 50여명은 됐어요. 일요일마다 새벽5시에 좌선하고 교당청소가 끝나면 여수시청, 경찰서, 자산공원까지 삼삼오오 나눠서 말끔히 청소를 했죠. 일요일 단 한 차례 좌선이 집중력을 단련시켰고 제게는 커트라인 높은 의과대학을 가는데 큰 도움이 됐죠."

그가 의과대학에 진학 당시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형이 그를 선교하기 위해 쏟은 가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았던 이야기는 신선하고도 감동적이었다. 그러다 결국 그런 형이 아버지(장원제)의 49재를 지켜보면서 원불교로 개종을 결심했고, 어머니(백기명)의 열반 즈음에는 형제자매들과 조카들까지 온가족이 여수교당에서 합동 입교식을 올리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생전에 자식들을 위해 올린 끊임없는 공덕과 기도의 위력이라고 생각해요. 여수교당 2대 교도회장이셨던 아버지와 유난히 신심이 깊으셨던 어머니의 생활이 곧 원불교 교법대로 살아오셨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요."

그는 형제들의 동의를 받아 부모의 제사를 예전 가례의식에 따라 여수교당에서 지내고 있다. 제삿날이 평일이면 전 주 일요일로 날을 정해 서울, 광주, 여수 등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교당으로 모이게 한다. 간소하게 재를 지낸 후 서로 얼굴도 보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우애와 가정의 화목이 우러나온다고 가례의식의 장점을 줄줄 털어놨다.

"역시 원불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의사인 누나와 동생, 의사인 형님 등 바쁜 직업들을 갖고 있는 형제들이다 보니 물론 원불교 예법이 간편해서 좋고, 차례상 음식 안하니까 좋고, 무엇보다 독경으로 정성껏 축원해 드리니 너무들 좋아 하십니다."

이들 부부가 만들어가는 행복한 일원가정은 목표도 뚜렷했다.
"아들 원도와 딸 명은이를 격의 없이 자유스럽게 키웠지만 며느릿감과 사윗감은 반드시 원불교 교도거나 신앙을 함께할 사람이라는 조건을 내세웠어요. 다행히 아이들도 '엄마 아빠처럼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할께요'라며 순순히 수긍하데요."

부부가 합심하여 만들어가는 일원가족의 모습은 언제 봐도 교도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또 온 가족이 함께하는 법회는 교화의 튼튼한 백년대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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