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33: 원불교도 이적을 믿나요?

답: 어느 종단이나 창립을 할 때는 항상 이적이 나타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저희 교단이 창립하는데도 그러한 이적이 있습니다. 예로 예수님이 탄생할 때는 새벽하늘에 별이 동방박사 세 사람을 마구간으로 이끌었다든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자 마자 룸비니 동산에서 일곱 걸음을 옮긴 후에 "유야독존"의 사자후를 토하신 것 등입니다.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선외록〉 유시계후장 16에 보면 "과거 세상에는 불보살이나 회상을 연 도인들의 역사와 경전을 꾸밀 때에 태몽을 비롯하여 특별한 이적 특별한 예언 등을 많이 넣어서 장엄이 심하였다. 그것이 그 분들을 신봉하게 하는 데에나 권선을 하는 데에는 다소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일반 대중 가운데에서는 큰 도인이 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역사와 경전을 만들 때에 절대로 장엄을 실상에 넘치게 하지 말라" 하시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단 초창기의 많은 이적을 하나도 기록치 못하게 함으로서 교단에서는 후일 이적을 행하는 것을 금하였던 것입니다. 교도들이 법을 믿어야 하는데 이적을 행하다 보면 법의 방편인 이적을 믿게 되고 허황된 믿음을 양산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종사님은 정산종사를 한때, 토굴 속에 가두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정산종사는 기도에 주력하여 영통이 있어 자꾸 이적이 나타나니 그것을 사라지게 하여 큰 공부 하게 하려고 그러셨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시는 장면이 있는데 이로 인하여 후세에 많은 목사들이 환자를 고치겠다고 나서서 최근에도 안수기도 한다고 사람을 죽이는 사례를 많이 보시지 않습니까? 강증산 계통의 종교가 한 때 신도 1,000만이라고 호언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어렵게 된 배후에는 강증산이 이적을 수시로 행함으로써 법보다는 이적을 믿는 허수의 신도가 많았던 영향이라고 설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강증산 사후 전부 제자들이 서로 이적을 행함으로서 서로가 정통파라고 주장하며 80여개 파로 갈라졌으나 현재는 60개 파로 분파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면에서 다시 한번 "사람을 신앙하지 않고 법을 믿는" 고등 종교로서의 원불교를 이해하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교단의 대표적인 이적은 백지혈인의 법인 성사입니다. 원기4년(1919년) 8월21일에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적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죽을 수 있겠느냐는 대종사님의 질문에 '사무여한'의 증서를 써서 각각 맨손가락으로 도장을 찍어 상위에 올리고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백지혈인의 이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는 천지신명이 살신성인의 정성에 감복하여 이적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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