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 기도봉 창생을 위한 기도 - 법계인증의 산실

▲ 9인 기도봉. 장다리봉(이산 이순순 선진 기도)과 대파리봉(팔산 김광선 선진 기도)
창생제도를 위한 법인기도를 통해 우리 회상이 진리계로부터 음계 양계 인증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시 법인기도를 올리던 시점은 일제 강점기로써 일제의 수탈로 인한 민중의 고통이 극히 심하던 시기였으며, 민족자결주의를 표방한 우리 민족의 3·1 만세운동이 불길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소태산 대종사와 아홉분 제자는 원기3년부터 4년까지 낮에는 방언공사에 공동 출역하여 초기 교단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세우는 한편 밤에는 구간도실에 모여 공부를 하던 시기였다.

당시 대종사에게 바친 방언공사 서약문에서 아홉 제자는 "몸을 공중사에 다하여 비록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할지라도 조금도 퇴전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여 종신토록 그 일심을 변하지 않기로써 혈심 서약한다"는 내용으로 힘겨웠던 1년여의 방언공사를 마쳤다.

이후 소태산 대종사는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하라"는 말씀으로 창생제도를 위한 기도를 제자들에게 명하였다.
구인 제자들이 기도를 올렸던 봉우리는 중앙봉을 기점으로 문왕팔괘에 의해 정해진 아홉 봉우리이다.

영산성지의 구인 기도봉 봉우리에 대한 사료를 찾아보면 영산선원 초대원장(원기48년 6월~원기54년 4월)을 역임한 향산 안이정 종사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영산 선원장으로 재직 전에는 구인 기도봉에 대한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법인기도 당시 선진인 일산 이재철, 사산 오창건, 칠산 유건 선진님의 생전 구술과 영산에 거주하는 대종사 당대의 제자인 장종선, 최복경 교도의 고증을 통하여 정했다. 그중 최복경 교도의 고증을 많이 참조한 내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때 단원들은 4월26일(음3월26일)로 시작하여 8월11일(음7월16일)까지 석 달 열흘 동안 음력으로 매월 6일, 16일, 26일마다 기도를 올렸다.
▲ 원불교역사박물관 내부에 재현된 9인 선진의 기도.
치재의 방식은 첫째 마음 청결을 위주하고 계문을 조심하며 목욕재계하며 기도 당일에는 오후 7시에 구간도실에 모여 단장의 지시를 받은 후에 각자의 기도봉에 올라갔다.

기도는 밤10시~11시 정각까지로 하고 식을 마친 후에는 일제히 도실로 돌아왔는데, 기도봉에 올라갈 때에는 단기를 제작하여 세우고 향과 초, 청수를 진설하고 헌배와 심고를 올리며 축문을 독송했다. 이때 올린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법인기도 산상 기도문

단원 모(某)는 삼가히 재계하옵고 일심을 다하여, 천지 부모 동포 법률 사은전에 발원하옵나이다. 대범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물이며, 인도는 인의가 주체요 권모술수는 그 방편이니,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어늘, 만근이래(輓近以來)로 그 주장이 위를 잃고 권모사술이 세상에 분등하여 대도가 크게 어지러울 새, 본 단원 등은 위로 대종사의 성의(聖意)를 받들고 아래로 일반 동지의 결속을 견고히 하여, 시대에 적합한 정법을 이 세상에 건설한 후 나날이 쇠퇴해 가는 세도인심을 바로잡기를 성심 발원하오니, 복원 사은이시여 일제히 감응하시어 무궁한 위력과 한없는 자비로써 저희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단 내에 구인 기도봉과 관련된 법인기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법인성사가 있은 후, 18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원기22년 정산종사에 의해 저술된 〈불법연구회창건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원기38년에 정산종사에 의해 '원각성존 소태산대종사 비명병서'와 원기47년에 간행된 〈원불교 교전〉 대종경 서품 13, 14장에 창건사의 내용을 간략히 밝힌바 있다.

이후 교단적으로 법인기도에 관해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내다가 범산 이공전 원로교무가 〈원광〉11호(원기40년 9월) 사설에서 '7월26일을 기념하자'고 발의하여, 다음해 정산종사의 유지를 받들어 '법인기념일'로 정하여 이후부터 법인기도의 정신을 교단에서는 법인절로 기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원불교창립관 내부에 전시된 9인 선진의 기도

대종사 탄생가와 대각지 및 구간도실 터에는 건물의 복원 또는 석비, 석물시설을 하여 기념하였으나 혈인법인의 성사를 이룬 구인 선진의 기도현장에는 이를 알리고 기념할만한 시설이 없어, 원기76년(1991년) 2월에 시행키로 합의하고, 몇 가지 계획안 중 기도하는 모습을 단순 형상화한 화강석 기념물을 구인 기도봉에 세우기로 하였다.

표석 제작은 원기76년 2~3월 황등산 화강석 원석을 구입하여 소태산대종사 기념관에서 일하던 석공에게 맡겨, 설계에 따라 구인 기도봉에 세울 9조의 표석 제작하여 원기77(1992년)년 3월에 영산으로 운반하였으나 이 석조 구조물은 구인 기도봉에 옮기지 못하고 지금은 구간도실 터 주위에 위치하고 있다.

법인성사를 이뤘던 구인 선진들이 어두운 밤길을 헤치고 산에 올라 창생제도를 위하여 한결같은 정성을 바쳐 법계를 감동시켰던 구인 기도봉!

다가오는 원기100년, 후인들이 그 뒤를 이어 한결 같은 기도 서원을 올리는 자신성업봉찬의 힘찬 발걸음으로 성지의 구인 기도봉으로 향해보자.

<영산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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