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 숭배 신앙, 오악명산 제사 기원

▲ 수락산 산신제의 모습.

산신제는 마을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산신에게 올리거나(山祭, 洞祭, 洞神祭) 후손들이 묘사를 지내기 전에 올리는 제사이다. 요즈음 같은 경우 산행인이 늘어나면서 동호인끼리 매년 초, 한 해의 산행 안전과 친목 다짐을 위하여 산에서 지내는 제사(始山祭)를 산신제로만 아는 경우도 있는데 산신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도시인의 경우 시산제만이 산신제로 보는 일이 적지 않다. 이는 핵가족화 되면서 지방에서의 산신제 또는 조상 묘소 앞에서 제사 지내는 일이 없거나 보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산신제의 기원
우리 나라는 산이 많아 일찍부터 산을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다. 산악숭배의 신앙에서는 우주의 중심이 곧 산이다. 그래서 환웅은 이 세상의 중심인 태백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 온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아사달 산신으로 좌정했다는 점은 이미 고조선에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했음을 말해준다. 또한 단군, 주몽, 박혁거세, 견훤, 왕건, 이성계 등의 건국신화와 산신신앙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산악숭배는 우리 민족의 다양한 토착신앙중에서도 그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산신신앙은 신라시대에 성행하게 되었으며 고려, 조선 왕조에 들어와서 정기적일 뿐 아니라 천재지변 등이 있을 때마다 오악명산에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국가적 공동체 신앙에서 개인과 마을단위 신앙으로 확산됨에 따라 산의 정상 혹은 중턱에 위치하던 제당도 마을과 가까운 산 아래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면 산신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단군이 산신으로 좌정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최초의 산신은 남성으로 볼 수도 있으나 신라 시대에 들어와서는 대부분 여성으로 등장한다. 현재에도 산신 아기씨, 산신할머니로 여성 산신을 모시는 곳이 있어 그 잔영은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남성형으로 모습들은 다양하다. 산신제를 지내는 시기는 매년 초 또는 봄·가을에 지내는 경우도 있으나 그 시기와 날짜는 마을주민들이 합의하여 정하는 것이 흐름이다. 제관은 적당수로 실정에 맞게 정하며 진설은 제사 때와 같이 하나 약설로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조상묘소에서의 산신제는 묘소 동북쪽에 위치한 제단에서, 특별히 제단이 없는 경우는 상을 놓고 진설은 포(脯)와 주(酒)만으로 약설한다. 물론 축문(山神祝)도 있다.

문화의 흐름
문화라는 것은 한 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이동, 충돌·접목하며 변화해 간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오면서 도교에서의 산신과 만남 그리고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불교가 이를 수용하여 절에 산신각이 생기는 등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문화 역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 주위에 시향에 참석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한자를 아는 세대가 많이 줄어 가고 있는데 모르는 한문으로 계속 읽어대니 참석 자체를 기피하려는 경향도 있다. 노인층은 앞날의 걱정, 젊은 층은 유지 발전키 위하여 한글로 번역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 한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문화의 변화는 시간을 요한다. 축문의 경우를 보더라도 한문을 몰라도 대략적 의미만 알고 넘어 간다지만 시산제의 경우는 모두 알아 듣기 쉽게 하기 위하여 한글로 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첫 시작을 "유~세차(維~歲次)" 끝부분을 "향(饗)"이라고 하며 내용은 순한글로 길게 음을 뽑는 경우는 새로운 접목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이 제사 지내는 맛(?)을 더하는 것 같다고 한다.

또한 시향일을 아예 특정 월, 요일로 정해 놓아 젊은 층의 참석을 많이 유도케 하는 경우도 보면 시대적 요청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즈음 글로벌이니 세계화니 하여 이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내 것의 소중함을 버리거나 비하·망각하거나 무관심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통에 대한 오해라고 보고 참다운 세계화는 내 것은 내 것답게 특징을 살려가며 유지 보관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봄에 갖가지 꽃들이 각기 제 특성을 나타내어 산천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봄 장식을 하는 것과 같다.

축제로 이해해야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산신제는 옛 조상들에 있어서는 바로 토착신앙이었지만 밝아진 지금 세상에 신앙으로만 접근하여 다가가기란 힘들다.

서양인은 인간중심의 사고라면 동양인에게 있어서는 우주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명중시 사고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리라 본다. 오랜 세월의 삶에 젖은 문화는 일순간에 변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예로서 산악회 모임 결성이 몇 년 안 되었는데 시산제를 지낸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단순 친목 도모로 그저 남이 하니까 하는 그런 모습은 아닌가 싶다. 특히 시산제를 지낼 때만 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는데 요즘은 거기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뭐라고 말하지 않는 모습이 멋쩍다.

산신제는 우리의 오랜 전통 문화의 하나이다. 산신제라는 장을 통하여 마을 주민 간에 서로 정을 나누며 즐기는 축제로써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는 전통과 현대가 어울리는 새로운 축제 성격을 띤 행사로써 유지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세대의 바뀜은 점차 문화의 바뀜으로 연결된다.

나의 것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무엇을 어떻게 공유하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현재 우리의 할 일이다. 미래에 대해 미리 속단할 필요는 없다. 문화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변화하며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 조연봉
    중구교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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