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폭설이 잦았던 지난겨울,
산에 들에 내리는 눈보다 강에 내리는 눈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일 겁니다.
계속해서 철없이 강물에 내리는 눈발들… 그래서,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어린 눈의 생명을 구해보려고,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그 눈을 온 몸으로 받기 위해
변신을 시도한 것이라고
안도현 시인은 '겨울 강가에서' 말합니다.
여주의 남한강변에 둘러친 여강길을 걸었습니다.

첫머리 영월루에서 내려다 본 은모래금모래 백사장이
유난히도 눈에 밟힙니다.
지금 한창 4대강 살리기 공사로 파헤쳐져
반짝이던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포클레인이 백사장을 긁어모아 트럭에 실어 나르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입니다.
봄은 왔고, 얼었던 강물도 풀리고,
강 언덕도 푸르게 옷을 갈아입고 있지만
마음은 겨울 강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겨울 강물이 보여준
희생과 배려는 봄 강가에는 없습니다.
여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여주에서 살았다는
여든아홉살 이상철 할아버지는
80년 전 뗏목이 지나가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냈습니다.

"그 때는 도락꾸(트럭)가 없으니
저 영월에서부터 뗏목을 띄울 수밖에 없었겄지…"
한겨울 결빙기를 빼고 한 해 100 바닥이 넘는 뗏목이
여주 나루를 지났다고 했습니다.
한 바닥이 200 그루면 2만 그루가
한 해 이 남한강 물을 따라
한양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제 속살에 상채기를 내는 인간을
무심히 받아들이는 모래 위로
뒤척이던 강물은 무심히 흘러갑니다.

강 건너 신륵사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조차
봄바람에 무심하였습니다.

글 사진 / 황인철 sonamoo@wonnews.co.kr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