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의복을 입고 살아가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각자 옷을 입고 살아가는 데에 도가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사촌동생 데바닷타는 석존 말년에 교단의 개혁을 요구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수행승들은 누더기 옷을 입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자산가가 보시한 옷을 입으면 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종교인들이 옷을 화려하게 입는 것을 금하는 것을 개혁의 한 요인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의식주의 검소함을 강조하는 것은 유교에도 나타난다. 옛날에 증자가 3일을 밥 짓지 않고 10년을 옷을 짓지 아니 하였으되 낙도의 마음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며, 공자가 나물먹고 물마시며 팔벼개를 하고 누워있을 지라도 낙이 그 가운데 있었다고 하였으니 의식주에 흔연한 성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원기14년 이동안 선진이 전무출신의 검소한 복제를 위한 건의가 있었는데, 이공주 선진은 〈월말통신〉에 "그것은 곧 우리 불법연구회의 경제상 절약을 하기 위함이니 여자도 사람이요, 한 회원인 이상 어찌 중대한 경제문제를 등한시하리요"라며 "우리로써 저 속세에 유행되는 난잡한 사치에 빠져서 온전한 정신을 회복치 못하면 어찌 우리의 수치가 아니겠는가"라고 소감을 밝혔다.

고금을 통하여 왜 예(禮)아닌 의복을 사치스럽게 입지 말라고 강조하는가? 그것은 분수에 넘치는 사치의 의식주 생활을 염려하는 것으로, 의복을 검소하고 청렴하게 입자는 것이다. 화려한 의상(衣), 분에 넘치는 진수성찬(食), 기화요초의 집(住) 등은 세속의 사치에 불과하므로 결과적으로 재산의 손실로 이어진다. 절제가 없는 의복생활로 인해 적자의 삶을 꾸려가는 것은 가정이 쇠망하는 원인이 되므로 죄업의 근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옷은 분수에 맞게 입도록 하되 예의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며, 이에 거스를 경우 경제적 손실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빚지는 생활이 된다. 일부 상류층들이 즐기는 옷으로 옷 한 벌에 수백만원이고, 속옷 한 벌도 몇십만원이라는 소문이 들리는 것을 보면 귀를 의심해야 할 것인가? 대종사님은 비단 옷을 입으나 베옷을 입으나 한서를 방어하는 데에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불법연구회창건사 1편10장)라며, 특신급 4조에서 "의복을 빛나게 꾸미지 말며"라고 하였다.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화려하게 입을 경우 그것은 외부의 장식에 치우칠 뿐 내면의 수양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의식주의 검박한 생활은 창립정신으로서 근검절약과도 연결된다. 대종사는 솔선하여 자신의 맏딸 박길선과 제자 송도성이 익산본관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평소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결혼식을 하도록 하였으니 사표가 아닐 수 없으며, 이것은 그가 사회개혁을 위한 '신정예법'을 선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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