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광 교무·원광대학교
    (논설위원)
최근에 경기도의 어느 종교계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마도 그 학교는 아침 여덟시에 학생들이 등교하여 교양강좌에 참여하도록 계획되어 있는데 그 교양강좌의 대부분이 특정 종교의 교회에서 이뤄질 뿐만 아니라 시험 역시 해당 종교와 직접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종교자유를 둘러싼 충돌은 비단 특정 종립학교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결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다만 지금도 해결을 요하는 과제 중의 하나일 뿐이다. 몇 주 전 학내 종교교육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2010. 4.23)도 결코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 과연 종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

종교의 자유를 둘러싼 종교 교단 내지는 종교계학교와 학생 또는 학부모간의 갈등의 배경에는 사학의 자주성과 교육의 공공성 간의 충돌로 비쳐지는 부분이 있다. 이 양자 간의 충돌이 자칫 종교교육 본연의 모습까지 손상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종립학교는 사학 그 나름의 설립이념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종립학교의 건학이념 구현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정부 수립 이후 정치권력의 종교에 대한 태도가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고 있다. 따라서 종립 학교 내 종교교육의 문제도 정치 아니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적 우위로 해결하려는 태도나 법에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모습도 결코 성숙하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종단이나 학교에서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은 왜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도대체 종교가 필요하다면 왜,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요구된다.

만일 그런 통찰이 결여된 종교교육 또는 종교 가르치기와 배우기는 학내종교선교, 종교포교, 종교교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종교 영토 불리기로 활용되어 왜곡되기가 쉽다. 이런 접근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보다는 종교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종교차별방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공포한 바 있다. 물론 이런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저런 통제 위주의 접근 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종립 학교 내에서 종교교육이 가능한 방안은 무엇일까? 사학의 자주성과 교육의 공공성을 충족시켜주는 공약수는 교육이라는 이름일 때이다.

반대로 종교를 앞세워 종립학교의 종교교육을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어디서든 마찰은 불가피하다. 설사 학생들이 선택한 종립학교라 할지라도 교회와 학교를 혼동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제한된 여건 아래 최선의 선택지 중 하나는 바로 종교성 함양 교육이다. 진정한 의미의 종교교육이 종교성 함양의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굳이 특정 종교의 교리위주 교육이나 신자 불리기보다는 왜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가? 인간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데 종교가 무엇을 어떻게 기여하는가?, 이웃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발전적 협력의 방향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교육이 될 것이다.

이렇듯 마루 되는 가르침인 종교의 교육적 기능을 충분히 살려낸다면 종교교육이 올바르게 자리 매김할 뿐만 아니라 굳이 국공립학교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후세대들에게 어느 학교에서든 종교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거듭 염원해 본다. 그 길 중의 하나는 종파교육 또는 종단교육이 아닌 종교성 함양의 길로 접어들 때 희망이 보인다.

이미 정산종사께서도 밝혀주셨듯이 교육에서 정신교육과 과학교육을 병행하되 '정신교육'이 주가 된다 하셨다. 이 부촉의 법문대로 정신교육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인류평화, 종교간 협력, 삶의 질이 보장될 뿐 아니라 종교교육도 제자리 매김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