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문 2

영가의 천도를 위한 법문으로 먼저 '모든 것은 스스로 지은 바의 결과'임을 일깨우신 다음 두 번째로는 성품자리에 대한 법문으로 깨우침을 주셨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다른가? 대종사께서는 생사의 이치도, 성품자리도 다 같음을 설파하셨다.

부처님과 일체 중생, 나아가 우주와 만물에 이르기까지도 그 근본은 본연 청정한 성품자리로 원만구족한 것이다.

다만 그 작용을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이 온갖 차이로 감지될 뿐이다. 생전에 '나'의 것이라 생각하고 애지중지했던 이 육신도 실은 지수화풍 사대의 이합집산에 불과할 뿐이요, 참 나의 실상은 더함도 덜함도 없이 영원한 것이니 어찌 생사라 할 수 있겠는가!

좌종소리와 함께 '아무야! 듣고 듣느냐' 하시며 간곡하게 일깨우시는 이 법음에, 영가는 문득 정신을 차려 육신 변화로 인한 초조함과 불안을 내려놓고 대안정과 대희망을 얻을 것이다.

이어서 세 번째로는 새 몸을 받을 때에는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우셨다.
불보살의 세계로 향할 것이냐, 삼독(탐진치)심이 치성한 중생의 세계로 향할 것이냐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력은 불보살이나 중생이나 다같이 갖추어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이다.

육신과 분리된 영가는 마음의 환영을 따라 움직이므로 평소에 즐겨하던 바를 쫒기 마련이다.
평상시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하였다면 본능적인 욕구가 이끄는 대로 휩쓸리게 될 것이다.

유정물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지는 것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그 알아지고 하고자 하는 마음을 공(公)을 위하는 방향으로 발하면 서원이 되고, 사(私)를 위하는 방향으로 발하면 욕심이 된다.

서원의 길은 불보살 세계로 향함이라 한없는 낙을 수용하게 될 것이나 욕심의 길은 집착의 중생 세계라 한없는 세월을 통해 무수한 고를 얻게 된다.
살아서 평소에 이 말씀을 자주 읽고 새겨서 스스로 불보살 세계에 찾아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미 열반을 하여 영가의 처지에서 이 법문을 듣게 된다면 다시금 혼몽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불제중의 서원을 다시 챙겨야 할 것이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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