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아, 썩 물러가거라

▲ 황상운 그림

마당바위는 당장 진섭이 곁에 산신령을 모셔올 듯 서기가 감돌고 있다.
"산신령이시여! 원하옵기는 저를 굽어 살펴주시고, 내 머리 속에 감도는 의문의 꼬리들을 시원하게 떼어 주소서. 간절히 원하옵니다."

진섭은 사방을 향하여 큰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아침마다 집을 나와 삼밭재에 오르면 그렇게 마당바위에서 기도를 하고, 때로는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하면서 온 종일을 보낸다.

진섭이 기도 올리는 삼밭재는 나무꾼조차 얼씬거림이 없다. 진섭은 오로지 산신령을 만나겠다는 마음뿐이어서 두려움이나 외로움도 모른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옥녀봉 바위처럼 날마다 제자리에서 기도에 온 정성을 쏟을 뿐이다. 산짐승이 다가와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진섭이 기도에 정성을 드리고 있을 때 구호동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난다.

어떻게 큰지 마당바위 언저리에 달무리 같은 은근한 빛이 감돌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구수산 호랑이다. 그러나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마당바위에 묵묵히 꿇어 앉아 있는 진섭에게는 감히 다가서지 못한다.

진섭은 기웃거리는 호랑이를 태연하게 돌아본다.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대가 산신령이 아니거든 썩 물러가거라."

소년 진섭은 타이르듯이 조용히 말한다. 호랑이는 소년을 호위하려는 듯 제자리에 얌전히 앉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어서 물러가지 못할까?"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돌멩이를 던지자 구수산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마당바위를 떠나고 만다. 소년 진섭이 기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진섭은 기도는 신성한 일이라 부정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산신령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마당바위 기도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 얘야, 너 요즘 어디서 무엇하고 다니느냐? 숨기지 말고 말 하거라."
아들이 서당을 나가지 않고 다른 곳을 다니는 것을 알아차린 어머니께서 걱정스럽게 묻는다.

"어머님, 제가 일찍이 세상의 이치를 알고자 하였으나, 갖가지 의심만 더할뿐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산신령께서 신묘한 권능을 지니셨다 하므로 만나 뵙고 모든 의심을 풀고자 삼밭재 마당바위에서 기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험한 곳을 올라 다닌단 말이냐? 아이고, 호랑이 먹이가 되려고 작정하였구나!"

"어머니, 그렇지 않습니다. 산신령을 만나는데 그까짓 호랑이를 무서워하다니요. 저는 기필코 산신령을 만나 저의 소원을 풀겠어요."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느냐?"

"예."
아들의 뜻에 감동한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주며 정성으로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한다.

"내가 일찍이 산신령을 본 일은 없으나 사람들이 산신령을 말하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만성이라고 꾸준히 기도하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한번 마음먹은 것은 변치 말고 소원을 이루도록 하여라."

아버지 역시 아들의 큰일을 쾌히 승낙 하면서 용기를 북돋워 준다.
진섭의 기원은 옥녀봉 바위처럼 굳세고 굳세다.
그러나 삼밭재 기도의 꿈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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