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불할 때까지 가정생활 안할라네

항타원 이경순 종사 15세 소녀로 출가했다. 그런 항타원 종사를 본 대종사는 "사(私)가 없는 대도인이 왔다"고 크게 기뻐했다.

원기64년 11월4일 교정위원회가 시작됐다. 교단 현실에 대한 몇 가지 토론이 전개됐다. 각종 훈련, 남자 교무 일선 교당 활용 문제, 남자 교역자 복장문제 등이었다. 항타원 종사는 "훈련을 받는 사람이나 시키는 사람이나 획기적인 전환이 없다면 대종사님에 대해 크게 부끄러운 일이요 교단의 장래가 염려스러워요. 이번의 훈련 문제는 건의 정도로 해서는 안됩니다. 전 교역자의 이름으로 결의하도록 합시다"라고 사자후를 토했다.

잠시 후 항타원 종사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 하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항타원 종사는 그렇게 의식을 찾지 못하고 1주일 후 총부의 10시 취침 종소리와 함께 열반에 들고 말았다.

항타원 종사는 일찍이 자기의 죽음을 예견한 것 같다. 하루는 양남근(부산교당 교도)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꿈을 꾸었네. 비몽사몽 간에 내가 꽃상여 속에 쌓여가는 것이 보여."

항타원 종사는 평소 다음 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성불할 때까지 가정생활 안할라네."

오로지 교단을 위해 정남 정녀를 하겠다는 말이다. 혹 여자라는 약점에 대해 이야기들을 하면 이렇게 말했다. "뭐 꼭 남자 될 거 뭐 있는가. 사람 노릇을 잘 해야지." 교단 일을 함에 있어 상(相)을 없애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이렇듯 항타원 종사는 신의와 법도로 일관하신 생애를 살아오셨다. 또 교단의 대의를 밝히고 법맥을 잇는데 조금도 허술함이 없었다.

〈항타원 종사 문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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