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 올렸네! 새 신랑 처화 머리에

▲ 황상운 그림

삼령기원상의 정성이 아무런 결실이 없자 진섭의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다.

'아니, 산신령님은 없단 말인가? 그럼, 5년 전 산제사 때 종친어른의 제물을 받아먹은 구름 타는 삼장법사는 영영 없단 말인가?'

이처럼 진섭이 애를 태우며 큰 걱정을 하고 있을 때다. 갑자기 영촌 하늘이 비구름으로 가득 차더니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를 치며 장마 비가 내린다.

영촌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이 홍수로 범람하여 진섭의 영촌 집이 둥 둥 둥 떠내려간다.

아버지가 구호동에 새 집터를 마련하고 나무를 베어다 말리고 다듬어 기둥을 세우더니 상량을 올려 새 집을 짓는다. 어린 날을 보냈던 집에서 구호동 새 집으로 온 식구가 이사를 한다.

진섭의 나이 열다섯이 되던 해이다. 구호동 집은 영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노루목에서 삼밭재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옥녀봉 위에 둥근달이 떠올라 구호동 마을이 온통 달빛에 젖는다.
"여보 진섭이 나이가 저만 하니 상투를 올려 주는 것이 어떠하오?"

삼령기원상의 허탈로 마음을 못 잡고 있는 아들에게 장가를 보내려는 어머니의 아들 사랑이다.
"진섭이를 장가보내? 하기야 나이 열다섯이면 보낼 만도 하지. 어디 좋은 규수감이 있기라도 한가요?"
"예, 홍곡리 장기촌의 양씨 집인데 듣기에 참한 색시라 하던데요."
"거, 좋죠. 그럼 진섭이를 장가보냅시다."

진섭이 달그림자를 밟으며 토방을 서성이고 있을 때 부모님 이야기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다.
"아버지, 내 나이 열다섯 어린 나이지요. 풀어야 할 것들이 산같이 쌓였는…."
진섭이 문을 열고 들어가 부모님께 장가를 들지 않겠다고 한다.

"진섭아, 그렇지 않다. 큰일을 하려면 장가를 먼저 들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느니라."
천성이 부모님 말씀을 거역 못하는 효자인지라 떠꺼머리 총각 진섭이 장가를 들기로 작정한다.

혼례가 치러진 첫날밤이다. 일가친척 마을 사람들이 신랑신부 첫 날 밤을 그냥 보낼리 없다. 새로 꾸민 방문 살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

"호호호, 저 새 각시 얼굴 좀 봐. 예쁘기도 해라."
"누가 아니래. 상투올린 신랑은 어떻고?"
새 신랑의 첫날밤은 엿보는 이들의 부러운 웃음소리를 물리치고 동트는 새아침을 맞이한다.

어여쁜 색시를 맞이한 새 서방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다.

혼례를 치르고 어른이 되면서 소년, 진섭의 이름도 '처화'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진다. '처화' 라는 이름은 남이 부르게 좋게 지은 이름이고, 나중에는 본명인 박중빈(朴重彬)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여기에 소태산(少太山)이란 아호를 붙여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도 새 부처님이신 대종사님을 '소태산 박중빈'이란 이름으로 성자(聖者)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머리에 상투를 이고 이름을 처화로 바꾸어 새 생활을 하는 것도 잠시뿐이다. 장가 가고 새 이름도 얻었으니 신랑 처화의 생활이 달라질 법도 한데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다. 아직도 삼밭재를 오르내리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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