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42: 얼마쯤 기증하면 공덕이 있다고 평가됩니까?

답: 아무리 기증을 해도 공덕은 없습니다. 얼마쯤 기증해야 공덕이 있다고 평가되느냐는 질문을 하는 순간에 공덕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양무제가 달마를 불러 만난 곳은 양나라 수도 금릉(金陵·현 난징)이었습니다. 황궁이 아니라 무제 자신이 감독하여 527년에 지은 동태사(同泰寺·현 계명사)에서 만났습니다. 동태사는 무제가 며칠씩 머무르곤 했던 행궁(行宮)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양무제는 광주자사(廣州刺史) 소앙(蕭昻)의 안내를 받고 온 달마를 보자마자 물었습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짓고, 경을 소개하고, 중에게 도첩을 내린 것이 셀 수 없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실제로 양무제는 504년 초파일을 기해 도속(道俗) 2만명을 이끌고 황궁에서 도교를 버리고 불교를 믿는 사도봉불(捨道奉佛) 의식을 거행했고, 511년에는 술과 고기를 금하는 단주육문(斷酒肉文)을 공표했습니다.

황제가 이러하니 양나라에는 사찰이 2800개나 번창했고, 승려는 8만2000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달마의 대답은 양무제를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전혀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오?" "속에 아무 성스러울 것도 없는 커다란 공입니다" "그러면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공덕을 생각하고 기증을 한다면 이것을 원불교에서는 유상 보시라고 하는데 그것은 복은 될지언정 공덕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보시는 무상 보시로, 주었다는 상을 갖지 않는 보시가 보시이며 유상 보시가 될 경우 그것이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무상 보시와 유상 보시의 차이를 저희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변의품 28장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계십니다.

"한 제자 여쭙기를 유상 보시(有相布施)와 무상 보시의 공덕의 차이가 어떻게 다르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보시를 하는 것이 비하건대 과수에 거름을 하는 것과 같나니 유상 보시는 거름을 위에다가 흩어 주는 것 같고 무상 보시는 거름을 한 후에 묻어 주는 것 같나니라. 위에다가 흩어 준 거름은 그 기운이 흩어지기 쉬운 것이요, 묻어 준 거름은 그 기운이 오래가고 든든하나니, 유상 보시와 무상 보시의 공덕의 차이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하시며 유상 보시와 무상 보시의 공덕의 차이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결국 무상보시만이 감동시킬 것입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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