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변화일 뿐

어떤 청년이 염라대왕에게 불려갔다. 일생의 업적을 평가받는 자리에서, 청년은 억울하여 항의하였다. "이렇게 일찍 데려오시려면 미리 예고장이라도 하나 보내야지. 이렇게 갑자기 부르면 어찌합니까?"

염라대왕이 말했다. "네가 살던 마을에는 가을도 없더냐?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날 병들어 죽은 사람도 없더냐? 너의 마을에는 권세 부리다가 일시에 잃어버린 사람도 없더냐? 그것이 모두 나의 예고장이었느니라."

머지않아 우리도 모두 죽게 되리라는 예고는 주변의 모든 변화가 항상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막상 나에게 닥쳐오리라는 것은 쉽게 망각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좀더 지혜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면 세상은 우리에게 죽음만을 예고하고 있지 않다. 겨울이 되어 앙상한 가지만 남았는가 싶더니 새 봄이 되자 싹이 돋아난다. 그뿐인가? 어제 졌던 해가 오늘 아침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무엇을 보여주는 것인가?

대종사께서는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도,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도,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그 찰나의 변화도 다 같은 원리라고 하셨다. 다만 시간의 길고 짧음만이 다를 뿐이라고 하셨다.

이 세상 만물은 반드시 움츠리면 펴지고 펴지면 움츠려들며, 나타난 것은 숨고 숨은 것은 나타나며 변화해 간다. 움츠리고 숨은 것은 음(陰)이요, 펴지고 나타난 것은 양(陽)이다. 태어남은 양이요 죽음은 음이니, 드러난 모습은 달라도 원리는 같은 것이다.

'불제자는 생멸 없는 이치를 깨달아 생사에 해탈을 얻어야 할 것이니, 생사라 하는 것은 사시 순환과 같은 것이며, 주야 변천과 같은 것이며, 일월 왕래와 같은 것이며, 호흡과 같은 것이며, 눈깜짝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감으면 뜨게 되고 뜨면 감게 되며, 들이 쉬면 내쉬게 되고 내쉬면 들이쉬게 되며, 밝으면 어두워지고 어두우면 밝아지며, 춘하가 추동되고 추동이 춘하 되나니,생사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선외록, 선원수훈장〉

대종사께서는 "마음을 들여놓고 내보내지 않는 입정(入定)공부와 마음을 내놓고 들이지 않는 출정(出定)공부를 잘하면, 태어나고 죽음에 드는 것을 자유자재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는 생사의 원리가 마음을 내고 들이는 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내고 들이는 것을 자유할 힘이 없다면 나에게는 죽고 태어남을 어찌할 아무 힘이 없으니, 생사가 비록 변화뿐일지라도 괴로움의 근원이 될 것이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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