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떠나는 영식이 새 몸 받는다

'오늘 저 해가 비록 서천에 진다할지라도 내일 다시 동천에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만물도 이생에 비록 죽어 간다 할지라도 죽을 때에 떠나는 그 영식이 다시 이 세상에 새 몸을 받는다'고 하셨다. 여기에서 만물은 유정물(有情物)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영식(靈識)이란 죽은 영혼의 의식이다.

불교의 유식설에서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여덟 가지 식(識)으로 구분하였다. 눈으로 보고 느끼는 안식(眼識), 소리를 듣고 느끼는 이식(耳識), 냄새로 느끼는 비식(鼻識), 맛으로 느끼는 설식(舌識), 감촉으로 느끼는 신식(身識)의 전오식(前五識)과 이를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서 판단하는 이성적인 기능의 '의식(제 6식)'이 있다.

그리고 감정, 정서, 본능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에고의 화신인 '말나식(제 7식)'과 과거 억겁의 모든 정보를 저장한 '아뢰아식(제 8식)'이 그것이다. 이 아뢰아식에 저장된 정보를 '업'이라고 한다.

안식이 눈을 근(根)으로 하고 빛을 경계로 삼고, 이식이 귀를 근으로 하고 소리를 경계로 삼는다면, 제 6식인 '의식'은 두뇌를 근으로 하고 생각을 경계로 삼는다. 따라서 의식은 두뇌가 손상이 되거나 정지되면 그 활동도 영향을 받는다. 제 7식인 말나식은 감각 기관들과 두뇌를 전부 포함한 육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모두 심어져 있다고 한다.

위의 일곱 가지 식은 모두 육신의 각 부분에 뿌리를 박고 존재하므로 육신이 죽게 되면 함께 소멸되지만 아뢰아식은 육신에 근을 두지 않고 향냄새가 옷에 배듯 훈습된 식이므로 육신이 소멸된 뒤에도 남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육신이 죽을 때 떠나는 영식이란 유식설로 보면 아뢰아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경험이 함장된 아뢰아식은 다시 새로운 연을 따라 새 몸을 받아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그 활동을 멈추어 영식이 떠나면 한낱 무정물에 불과하여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이생의 몸을 벗고 다시 새 몸을 받는 것을 옷을 갈아입는 것에 비유하곤 하셨다. 오래 입어 낡고 해어진 옷은 미련 없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우리의 몸도 오랜 세월 사용하여 늙고 병들면 집착 없이 벗어야 한다.

이생에 입었던 몸을 벗게 되면 대개 중음에 49일 간 머물다가 새 인연을 만나 입태가 되고 그에 따라 영식이 새 몸에 어리게 되니, 그 식심만은 생전과 사후가 따로 없다고 하셨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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