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일상화된 선과 스승의 수행지도
위빠사나 수행의 세계화와 활발한 응용에 의한 현대적 위상 증대
서양인에 맞는 화두만들기와 의문에 대한 해설서 작성 해야

▲ 김재성 교수(사진 왼쪽)가 위빠사나 수행의 연원과 특징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선(禪)을 논할때 그 의미를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흔히 한국사회에서의'선'은 육조혜능(六祖慧能)이후 중국에서 독자적인 수행법으로 자리 잡은 임제종(臨濟宗) 계통의 간화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는 동북아시아 불교권의 대표적인 수행법의 하나이다. 한편 위빠사나 수행은 초기 상좌부 계통 불교경전의 가르침에 바탕한 수행법으로 미얀마 등 남방의 불교권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선'은 간화선뿐만 아니라 조동종(曹洞宗) 계통의 묵조선 등 다양한 선법,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까지도 아우르는 넓은 의미로 불교 수행의 대명사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알렉산더 이후 인도 북부의 그리스 제국을 통해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새로운 것일 수 없으나, 선(禪)이 서구사회에 전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100여년 전 일본 임제종의 스즈키 다이세쯔(鈴木大拙, 1870~1966)의 스승인 샤쿠 소우엔(釋宗演, 1859~1919)이 미국에 선을 처음으로 알린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위빠사나 역시 20세기 중반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1904~1982)를 비롯한 뛰어난 수행자들에 의해 세계에 전파 된 것이므로 남방의 전통을 벗어나 세계에 전해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위빠사나 수행의 연원과 특징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김재성 교수는 '위빠사나 수행의 연원과 특징'을 중심으로 그 현대적 위상을 밝히고 위빠사나 수행의 4가지 주요 전통을 소개하였다. 먼저 가장 중요한 전통은 마하시 사야도에 의한 '마하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하시 사야도는 〈대념처경〉의 주석서, 복주서 등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등 상좌불교 교학에 철저히 바탕하여 수행에 전념하였다. 2차 대전이후인 1949년에는 우 누(U Nu, 1907~1995) 초대 수상의 요청으로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본격적인 수행지도를 하게 되는데, 마하시 수행법의 수행지도자들은 교학과 수행을 기본적으로 겸비하여 충실한 상좌불교 교학에 바탕한 수행이라는 미얀마 불교의 한 특징을 계승하고 있다. 마하시 전통의 수행은 예비단계를 거쳐서 본격적인 좌선과 행선 그리고 일상행동의 관찰등의 차례로 진행된다. 특히 마하시 전통의 위빠사나 수행의 특징은 좌선할 때는 일차적인 관찰 대상으로 배의 움직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과 좌선과 함께 걷기 수행(行禪)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 가고 서고 앉고 눕는 행주좌와의 일생생활의 움직임에 대한 빈틈없는 마음챙김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수 있다.

다음으로 모곡 사야도(Mogok Sayadaw, 1899~1962) 우 위말라(U Vimala)의 경우는 아비달마적인 교리 해석에 바탕하여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였다. 1962년 모곡 사야도 입적 후 현재 재가 제자들이 '모곡 수행센터'를 열어 미얀마 전국 200곳 이상을 운영하고 있다.

세 번째 위빠사나의 주요 전통으로 고엔카 전통을 들 수 있다. 고엔카(Goenka, 1924~)는 1955년 재가 스승인 우 바 킨(U Ba Khim, 1899~1971)의 지도를 받으면서 14년 동안 수행과 교리공부를 하다가 45세 때 고향인 인도에 돌아와 위빠사나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로는 파욱 전통을 들 수 있다. 파욱(Pa-Auk, 1934~) 사야도는 〈청정도론〉의 40가지 수행 주제를 대상으로 사마타 수행을 인간의 성향에 따라서 제시하는 등 미얀마에서는 드물게 위빠사나 수행과 함께 사마타 수행의 전통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있어 미얀마는 물론 한국의 수행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상의 위빠사나 수행 전통은 이미 전 세계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도록 대중화되었다. 서양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Insight Meditation, Mindfulness Meditation으로 1970년대 중반이후 행동의학과 심리치료의 핵심 치료기제로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서도 심리학계를 중심으로 연구의 소재로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는 등 위빠사나 수행은 불교적인 맥락외에서도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어 그 현대적 위상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무문관에 바탕한 입실제도
서강대 서명원 교수는 '간화선의 서구문명에의 전달과 수용-입실제도(入室制度)를 중심으로' 발표 하였다. 프랑스 출신 서 교수(Bernard Senecal)는 가톨릭 신부로서 오랫동안 몸소 간화선 수행을 했을 뿐 아니라 성철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을 주제로 파리 제7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며, 현재는 예수회에서 설립한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한국불교를 강의하고 있다. 또한 직접 한국선도회(韓國禪道會, 선도성찰나눔실천회의 전신)의 일원으로 북미와 서유럽의 제자들에게 간화선을 지도하고 있다. 이날 발표에서 서 교수는 실제로 간화선을 수행하는 북미와 서유럽 사람들을 지도할 때 그들에게 어떻게 '입실제도'를 적용시켜야 하는지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입실이란 간화선 수행자가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 정기적으로 꾸준히 스승의 방(祖室)에 들어가 자신의 수행 과정에 대한 개별 점검 받는 것을 말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선원청규로 알려진 '백장청규(百丈淸規)'의 요지를 전하고 있는 '선원규식(禪院規式)'에는 아침마다 입실참문 하도록 정해져 있다. 다만 현재 한국의 전반적인 간화선 수행풍토에서는 평상시 정기적인 입실제도보다는 제자가 의문이 있을 때 참문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형편이다.

서 교수 역시 '무문관(無門關)'을 바탕으로 하는 입실제도를 취하여 지도하고 있는데, 이 방식은 일본의 임제종, 조동종,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간화선 수도단체인 삼보교단(三寶敎團)에서도 사용한다고 한다. 관음선종(觀音禪宗)의 창설자인 숭산(崇山, 1927~2004)스님이 입실제도를 확립하는데 사용한 십문관(十門關) 역시 열 칙(則)중 일곱 개가 무문관의 고칙(古則)이며, 그 첫 번째가 '조주무자(趙州無字)'이다. 일반적으로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은 명상 자세와 호흡법을 몇 달간 익히고 나서 초보자들을 위한 화두과정을 다 마치고 무문관으로 들어가 화두를 하나씩 풀어가도록 하는데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입실을 통한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객관적인 점검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문화가 서로 다른 서양인의 수행자들에게 입실제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단지 스승과 제자, 깨친 자와 깨치지 못한 자의 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진리에 대한 대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스승과 제자가 각각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도 서로 일깨워가는 과정, 즉 같이 배워가며 서로 성장함으로써 더욱 더 깊은 통찰을 얻어 가는 상생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서구문명에 알맞은 입실제도의 정신일 것이다. 더 나아가 입실제도 외에도 충분한 상담 시간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서구문명에 알맞은 화두만들기가 필요하다. 다만 단순히 현대인을 위한 화두를 만들려고 하다가 역대조사들이 남겨준 고칙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간화선 입실제도의 생명이 유지될 수 있을런지가 매우 중요한 의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일련의 화두를 계속 만들고 실험하면서도 '무문관'과 같은 공안집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해야 할 뿐 아니라 서양인이 제기할 수 있는 온갖 의문에 대하여 대답을 제공해 줄 수 있도록 해설서도 작성되어야 한다.

서 교수는 서구문명에 간화선이 성공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좀 더 폭넓고 완전히 열린 입실제도가 요구된다고 한다. 즉 선(禪) 및 불교 전체가 서양문화와 다차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의 수행체계만 보아도 다양한 갈래가 존재하고 있으며, 현재 서구문명은 인류 역사상 선례가 없을 정도로 불교의 온갖 종파들이 공존하고 있다. 나아가 지금 서양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서 교수는 서양을 위한 입실제도가 또 하나의 닫힌 우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입실제도의 바른 지도가 이웃종교와 대화와 만남의 장이 되고 종교 간의 경계선은 넘나들 줄 아는 정신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선의 일상화와 스승의 문답감정
선의 세계에 어느 특정 선법(수행법)이 절대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선은 인류 사회의 핵심 사상으로까지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종교뿐만 아니라 현대철학, 과학, 의학 및 예술과 문화 등 인류 정신문명의 전반에서 그 가치와 효과가 입증되어 가고 있다.

위빠사나 수행이나 간화선을 물론하고 공통적으로 중시되는 경향은 선이 이미 재가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고 있으며, 이론적인 관심을 넘어서 직접적인 수행 체험과 현실 활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위빠사나 수행에서의 스승의 면밀한 지도나 간화선의 입실제도 등 스승의 수행지도에 큰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은 스승과 지도인을 통한 문답감정을 중시하는 본교의 수행풍토와도 견주어 볼만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11일 동국대학교 다향관에서 '선과 현대사회'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 글중 일부를 요약, 해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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