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이 한 세상

'세상 말이 살아있는 세상을 이승이라 하고 죽어가는 세상을 저승이라 하여 이승과 저승을 다른 세계같이 생각하고 있으나, 다만 그 몸과 위치를 바꿀 따름이요 다른 세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여기에서 '다른 세상'이란 '이승과 저승이 서로 관계가 없이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전개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사람이 죽으면 염라국의 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데 최판관이 이승에서 한 모든 행동을 적은 문서를 들고 낱낱이 읊어 생전의 선 악간 행위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여 다음 생을 받게 된다고 한다.

정산종사께서도 염라국의 사자가 사람을 데려간다는 사실 여부에 대한 질문에 "죄 없는 사람은 경찰서 출입을 마음대로 하고, 죄가 조금 있는 사람은 경찰서에서 호출을 하며, 죄가 중한 사람은 경찰서에서 잡아 가는 것과 같다."고 하시고, 대종사께서는 일생동안 사실로 기록한 상시일기가 염라국 최판관의 재판문서보다 더 틀림이 없다고 하시어, '염라국'이니, '최판관의 문서'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이는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에 잠재된 용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일 뿐, 모두 비유의 말씀일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영원한 생을 살게 된다고 말하고, 일부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강을 건너 꽃밭을 지나고 과거에 죽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깊이 신앙하는 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중음의 상태에서 보거나 겪게 되는 이 모든 현상들은 실제로 존재하기보다는 그 마음속에 담긴 생각들이 투영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치 사람이 잠이 들어 꿈을 꿀 때에 몸은 방에 그대로 있지만 잠재된 의식만 드러나서 온갖 경험을 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다.

영식이 떠난 우리의 몸은 무정물일 뿐이요 잠재된 의식만이 꿈꾸듯 전개되는 것이라, 유식설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죽음으로 인하여 안·이·비·설·신 전오식은 닫혔지만 아직 의식과 말라식의 잔상이 남은 상태에서 오는 현상일 것이다.

불보살들은 잠재된 식이 모두 청정식이므로 바르게 보고 거래하시지만, 범부 중생들은 무명의 업식이므로 잠재된 잔상이 드러나면 왜곡이 되어 전도몽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심신간 작용한 모든 것은 나의 의식에 잠재되고 허공법계에 저장되었다가 연을 만나면 호리도 틀림없이 풀려나오기 때문에, 살아있는 이승이나 죽어간 저승이나 모두 한 마음 작용에 따른 것일 뿐, 다른 세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성지송학중학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