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 불효막심한 자식을

▲ 황상운 그림
안중근 의사가 조선침략의 원수 이등박문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죽였으나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는 슬픈 날을 맞이한다.

그 해 박중빈이 나이 스물이 되는 1910년 초겨울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스산한 저녁 중빈이 '콜록 콜록'기침을 심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 곁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아버지, 얼마나 힘드세요."

"나는 이제 저 세상으로 갈 때가 되었구나. 내 비록 가난하게 태어나 배운 것은 없지만 널 뒷받침해 성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박성삼의 죽음이 다가오자 중빈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버지! 이 불효막심한 자식을 꾸짖어 주십시오. 우리 집이 이렇게 기울어 버린 것도 제 탓입니다."

"그런소리 마라. 재물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유한하니 이렇게 간다만 너는 기필코 소원을 이루어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중단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뜻을 펴야 하느니라. 내 저 세상에서 너의 성공을 보고 기뻐하리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아들을 정성스레 뒷바라지 해온 아버지 박성삼은 끝내 한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죽음은 중빈에게 큰 충격을 준다.

아버지는 평생토록 농사짓는 일을 재주로 삼고 일꾼을 둘 정도로 재산을 모았고, 중빈이 뜻을 이루도록 뒷바라지를 다 해왔다. 그러나 중빈이 집안 일을 돌보지 않았고, 흉년에다 일본 사람에게 땅을 빼앗기는 바람에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진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영광읍에 사는 고리대금업자가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온다.
"박중빈 너! 이번에 돈을 갚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지금은 도저히 갚을 길이…."

"뭐라고? 지금 못 갚는다. 네가 콩밥 맛 좀 봐야 갚을 것인가?"

박중빈은 난생 처음으로 갖은 수모를 당한다. 그는 할 수 없이 농사일에 손을 대고 마을 사람들과 읍내에도 나가 돈을 벌 궁리를 하게 된다.

"부인, 강변 나룻터 옆 귀영바위에 식당을 차리면 어떻겠소."
양씨 부인에게 묻는다.

"손님이 있겠어요?"
"거기는 영광, 법성포, 무장 가는 길목이라 손님은 좀 있을지 모르지요."

"그럼 식당을 한번 열어 보시죠."
중빈네는 식당을 연다. 그러나 10년이 넘게 사물의 이치를 밝히기에 여념이 없던 중빈으로서는 실패하고 만다. 식당을 실패한 중빈은 이웃 영광 장에 나가서 장사도 해 본다. 무슨 일을 해도 살림살이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힘든 고통이다.

아버지 없는 설움에 우두커니 앉아 있노라니 아득한 낭떠러지 위에 앉은 기분이다.
다행히 그를 아끼는 한 사람이 탈이섬 조기 파시에 장사를 나가도록 주선한다.

중빈은 황금빛 영광굴비 파시에서 비로소 약간의 돈을 번다. 그러므로 아버지 생전에 지었던 빚을 청산하게 된다. 이처럼 세상물정에 눈을 뜨면서 백성의 어려운 삶을 보고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이는 중빈에게 세상 이치를 알아 구도의 길에 들어서는 서광의 길목이리라.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