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 황상운 그림
"이 나라는 양반들이 망쳤어."
"양반 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왜놈 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됐구나! "

임금님을 나랏님으로 받들고 의지하던 백성들이 방황하는 것을 보면서 박중빈이 깊이 생각한다.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부싯돌 쓰던 사람이 성냥불에 놀라고 서양 사람들의 옷차림에 놀라고, 양반들의 호화로움에 놀란다. 한양에서는 임금님이 설탕과자의 맛에 어쩔줄 모른다 하여 북녘 설탕과 남녘 과자가 나라 망쳤다더니 결국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이다.

중빈은 나라가 망한 것을 곰곰이 생각한다. '나라가 도둑맞은 것은 아니다. 깊은 병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올바로 서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힘은 물질이다. 총칼은 물질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물질은 수단일 뿐이다. 모든 물질은 정신에서 나온다. 그러니 정신이 물질의 근본이다. 정신만 올바로 가지고 있으면 능히 일본을 이기는 물질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의 힘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수가 있다. 도적이 이 나라를 빼앗았지만 정신마저 가져가지는 못한다. 도적이 정신이 물질보다 더 크다는 것을 모르니 천만 다행이로구나!'

중빈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로 된 것에 어느 애국지사보다 분하게 여기면서 답답해한다.

'세상에는 천 갈래 만 갈래 길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도 얽히고 설킨 길이 있다. 사람들이 길을 찾지 못하여 헤매거늘 세상 이치를 깨쳐야 그 길들이 어떻게 통하는지를 알지 않겠는가?'

중빈은 이 큰 진리를 깨칠 방도를 모르고, 깨쳐주는 이도 없어 막연하기만 하다.
그는 집에 들어 앉아 생각에 잠긴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이 일을…."
푸~후' 중빈의 깊은 한숨이 구호동 골짜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간다.

아침부터 밤까지 눈뜨고 있는 동안은 오로지 그 생각뿐이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마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거기에 골몰한다. 생각이 끓어 넘칠 때는 입이 저절로 벌어져 무슨 말을 중얼거리다가도 생각이 막히면 다시 아득해진다.

옥녀봉 위에 올라 노을지는 해넘이를 보고 삼밭재 마당바위에 앉아 찾지 못한 산신령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도사 찾던 길을 걷다가도 무슨 생각이 잡힐 듯하면 우두커니 돌부처가 된다.

"허허, 참 안 됐어."
"누가 아니래, 아버지 잃고 혼자 살아가려니 힘든 모양이지."
"그렇다고 정신을 놓으면 쓰나."

돌부처가 된 중빈을 보는 마을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다. 그렇지만 중빈에게는 그런 소리쯤은 귓바퀴 근처에도 못 들어온다.

'이 일을 장차 어찌 할까?'
가슴에 뭉쳐진 의심덩어리,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한 목숨 불타버리고 말지언정 뒤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굳은 결심을 한다.

그는 산을 오르내린다. 몸을 씻고 기도를 한다. 끼니를 거르며 며칠 동안 집에 오지 않는다. 신령스런 산의 정기에 휩싸인다. 산의 정기가 산줄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본다. 맥맥히 흐르는 정기가 백성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절망과 같은 어둠이 지나가면 해는 다시 떠오른다.

그러나 떠오르는 해는 아직도 중빈의 편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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