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게, 중빈이! 정신 좀 차리게

▲ 황상운 그림
"어, 중빈이, 몸도 생각하게. 그러다가 큰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중빈보다 열 살은 더 위인 김성섭이 외딴 집에서 구도를 하는 중빈을 찾아 따뜻한 위로와 걱정을 아끼지 않는다.

"선생님은 여느 양반하고는 다릅니다. 이렇게 고생하시는 것은 큰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어리석은 아낙네이나 선생님의 불편하심을 덜어드리고자 합니다."

주막을 하면서도 박중빈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아낙네가 김성섭 어른께 하는 말이다.

그녀는 주막을 하면서 박중빈을 돕다가도 장사가 안 되면 품앗이로 밭을 메주고 양식을 얻어다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나 구도에 몰두하는 중빈의 기골은 날이 갈수록 눈뜨고는 볼 수 없다. 온몸에 종기가 나 고름이 흘러내리고, 배가 물동이처럼 부어오른다.

'아! 선생님이 지닌 지난날의 늠름한 기상과 장대한 기골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주막 아낙이 소스라치며 혼잣말을 한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큰 뜻 품고 고생하는 우리 선생님 소원 성취 이루도록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중빈을 보다 못한 아낙이 정화수 앞에서 날마다 천지신명께 올리는 기도소리다.
"아니, 무엇하고 있는 것이오."
"저저…. 선생님의 소원 성취를 빌고 있습니다."
"말해보구려. 내 무슨 소원인지?"
"선생님을 영광군수 되게 빌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빌어주는 것은 고마우나 내가 군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이면 이 고생을 왜 하겠소?"
"어찌 부귀영화를 싫다하십니까?"

"이 어지러운 세상에 자기 혼자만의 복을 구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오. 이왕 복을 빌어 주려면 이 세상 만민을 구하는 능력을 내려 달라고 해주시오."

"큰 어른의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이제 만국 양반이 되어달라고 빌지요."
중빈이 기도하는 노루목 외딴집 지붕이 잡초가 무성하고 비가 오면 방에 배를 띄울 정도다. 그러나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뿐이다.

"참 불쌍해라. 중빈이가 문둥병에 걸렸다지?"
"뭐? 문둥병!"
마을 사람들이 박중빈이 궂은 병에 걸렸다하여 노루목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런 중빈에게는 큰형과 같은 김성섭이 또 나선다.
"여보게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리게. 이게 어디 사람 꼴인가? 길은 좀 멀다만 고창 심원에 자네가 있기 편한 초당 하나 마련했네. 거기에서 좀 머무르게."

초당은 김성섭이 알선해 준 것으로 전북 고창군 심원면 연화봉에 있다.
중빈이 연화봉 초당에서 겨울 동안 이불도 없이 솜옷 하나로 보낸다. 가끔 별을 보며 무한한 신비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연화봉에서 돌아온 후로는 자주 망각에 빠져든다. 하루는 부인이 탄식을 하며 큰 소리로 불러 깨운다.
"여보!"
"그랬군, 음~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
비로소 눈을 뜬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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