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wet-land)란 말 그대로 젖은 땅, 축축한 땅, 물이 고여 있는 땅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들에게 혐오스럽고 지저분한 곳이며 해충이나 병원균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개발되어야 할 곳으로 간주되어 농경지로 이용하기 위해 배수, 개간되었으며 또는 인간의 윤택한 삶을 위한 명목으로 매립되어 주거지, 산업단지 또는 도로, 공원 등으로 우리 주변에서 아쉽게도 습지는 많이 사라져 갔다. 지금도 개발논리에 의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1960~197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습지가 갖는 홍수조절, 수질정화, 야생동물의 서식지 및 생물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서식처 등으로 탁월한 환경보전기능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야 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97년에 101번째로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에 가입하였으며 1999년에 습지보전법이 제정되어 습지의 훼손 및 소멸에 대해 국가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3년의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와 2005년의 천성산 도롱뇽 소송사건 등은 국책 사업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였지만 역으로 습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습지의 정의

먼저 늪, 벌, 포, 소택지로 불리었던 습지의 정의를 알아보면 여러 가지가 있으나 습지에 대한 국제적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서는 '자연 또는 인공이든, 영구적 또는 일시적이든, 정수 또는 유수이든, 담수, 기수 혹은 염수이든, 간조시 수심 6m를 넘지 않는 곳을 포함하는 늪, 습원, 이탄지, 물이 있는 지역'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기수(brackish water)는 바닷물과 강물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통 강의 하구에서 부터 2~3km정도의 범위의 물을 말하며, 통상적으로 인정하는 습지의 수심 2m 이하를 초과하여 수심 6m까지 확대한 것은 물새가 잠수하여 먹이를 잡아먹는 깊이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습지보전법에서는 '습지라 함은 담수, 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내륙습지 및 연안습지를 말한다. 내륙습지라 함은 육지 또는 섬 안에 있는 호 또는 소와 하구 등의 지역을 말한다. 연안습지라 함은 만조 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으로부터 간조 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까지의 지역을 말한다'로 되어있다. 참고로 내륙습지는 환경부에서 관리하며 연안습지인 갯벌은 국토해양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인데 국토의 종합적 관리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습지의 유형

습지를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는 데 습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도 되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습지보전법에는 단순히 지형학적 특성에 따라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로 구분되어 있다. 내륙습지는 다시 하구습지, 강·하천습지, 배후습지, 산지습지, 자연호·석호, 인공호·저수지로 나누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습지(natural), 인공습지(humanmade)로 구분할 수 있으며, 침수기간이나 빈도에 따라 영구적 습지와 계절적 습지로 분류되며, 수원(water source)에 의한 분류는 빗물에 의에 유지되는 강우형 습지, 지하수에 의한 지하수형 습지, 하천이나 호수 주위의 지표수형 습지로 나누어진다. 또한 전반적으로 해안형(marine system), 하구형(estuarine system), 하천형(riverine system), 호수형(lacustrine system), 소택형(palustrine system)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습지의 정의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습지의 구성요소는 생물의 성장기의 중요한 시기 동안 물의 존재 여부인 습지수문(wetland hydrology), 습윤상태에 적응된 토양발달 여부인 습윤토양(hydric soils), 습윤상태에 적응된 식생발달 여부인 습지식생(hydrophoic vegetation) 등으로 습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습지의 기능과 가치

습지는 거대한 스폰지 작용을 하여 홍수기에 빗물 등을 머금었다가 건기에 서서히 배출함으로써 홍수의 피해를 줄이고 건조기의 피해를 완화 시키며, 폭우 등의 유속을 저감하여 침식피해를 적게 하고 우리 몸의 콩팥과 같은 필터링 작용으로 수질 개선을 하며, 습지에서 자라는 수생식생들은 인(P), 질소(N) 등 여러 가지 영양물질을 제거하여 부영양화를 예방하며 또한 어류, 조류, 기타 야생동물들의 서식처가 되어 생물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들며, 생태관광 활용 등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홍수 조절(flood control) ▷지하수 보충(ground replenishment) ▷해안선 안정화 및 폭풍으로부터 보호(shoreline stabilisation & storm protection) ▷퇴적물 및 영양분 유지(sediment & nutrient retention) ▷기후변화 완화(climate change mitigation) ▷수질 정화(water purification) ▷생물다양성의 유지(reservoirs of biodiversity) ▷습지 생산품(wetland products) ▷레크리에이션 및 관광(recreation·tourism) ▷문화적 가치(cultural value)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습지의 다양하고 중요한 기능에 대해 잘 이해함으로써 습지의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경관적, 심미적, 문화적 가치까지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습지의 기능이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어 사회적으로 이용될 때 일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습지들

우리나라 습지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습지보호지역은 ▷자연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희귀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도래하는 지역, ▷특이한 경관적·지형적 또는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지역으로 2009년 12월 현재 환경부 지정 14개소 111.365㎢, 국토해양부 지정 8개소 180.74㎢로 총 22개소가 지정 등록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있는 곳은 12개소 91.306㎢이다. 습지가 지니고 있는 각각의 특징과 가치를 이해하면서 시간을 내어 우리나라의 중요한 습지들을 찾아가 보는 것도 삶에 있어서 매우 여유롭고 유익할 것으로 생각된다.

'Healthy Wetlands, Healthy People'

습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많이 늦었지만 근래에 들어와서 습지를 보전하고자 하는 시민의식이 매우 높아지고 있으며 또한 습지보전법, 자연환경보전법 등 제도적 장치도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각종 개발사업과 영농행위 등에 있어서 경제적 논리와 효율성 등을 이유로 중요한 습지가 훼손되거나 파괴되는 행위가 계속되기 때문에 강력한 보전의지와 정책마련에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습지는 자연적으로 생성되거나 소멸되는 것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자연적인 습지의 변형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간에 의한 습지의 훼손이므로 인위적으로 훼손된 습지는 가능하면 복원토록 하며 불가피한 습지훼손의 경우에는 습지총량제 정책(No net loss of wetland functions)에 기반하여 대체습지를 조성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생태적 목적에 맞게 안내시설, 탐방시설, 관찰시설, 전시시설 등을 설치 운영하는 것도 필요한 데, 요즘 각 지방자치제별로 특색있게 설치,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2008년 10월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제10차 람사르 총회의 주제는 'Healthy Wetlands, Healthy People'로 즉, 건강한 습지는 곧 인류의 건강과 나아가 행복과 직결된다는 의미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이제 습지의 다양한 기능과 중요성을 이해하고 건강한 습지의 보전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마침 국내 습지연구의 메카가 될 국가습지센터가 경남 창녕군 우포늪 인근에 건립(2010년 10월 착공예정)된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습지에 대하여 선진국 대열에 합류코자 노력하는 것 같다.
▲ 박정배 전문기자 / 창원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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