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가 사시순환과 같다

시간이란 존재하는가? 천지만물이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것은 아닐까? 만물이 정지되어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삶의 허무감도 어느덧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이나 주변의 인연이나 환경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감정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번 공전하는 시간을 1년이라 하고,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한 번 회전하는 기간을 1일이라 하는 등은 사실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공동으로 약속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물은 그 고유한 품성을 따라 인과의 법칙으로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할 뿐인데, 우리는 찰나의 차이로 어제와 오늘을 나누고 거년과 금년을 구분 짓는다.

어제 서산으로 기울어간 태양과 오늘 아침 동녘에 떠오른 태양이 다르지 않듯이, 사람의 영혼도 살아도 그 영혼이요 죽어도 그 영혼이며 새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난 영혼도 같은 것이다.

마치 이 방에 있던 사람이 옷만 갈아입고 저 방으로 건너간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지수화풍 사대로 된 육체는 비록 죽었다 살았다 하여 이 세상 저 세상이 있으나,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다'고 하셨다.

죽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와버린 것이 아니다.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육체는 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해오다가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순간을 맞이한 것일 뿐이다.

즉 육신의 생과 사는 쉴 사이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찰나지간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찰나 찰나로 죽어간다는 뜻이요, 이는 또한 찰나 찰나로 되살아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생로병사의 변화에 괴로워하고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더운 여름이 빨리 지나고 시원한 가을이 오기는 기대하고, 춥고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기는 바라면서 인생의 변화가 그와 같음은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생로병사의 이치가 사시가 순환하는 것과 같음을 알며 이승과 저승이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변화를 수용하고 해탈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찰나로 변하는 이치에 늘 덧없이 죽어가며 살지만, 변화의 참 이치를 아는 사람은 항상 찰나 찰나를 살려가며 자유롭게 살아간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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