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가 한 체성 만법이 한 근원

▲ 황상운 그림
얼마 후 동학교도 몇 사람이 노루목을 찾아온다.

"동학이야 말로 세상을 구하는 참된 가르침이지요. 그런데 이 도가 바로서지 않아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 아닙니까?"

"그러게 말일세. 사람이 군자가 되고, 배움이 도덕을 이루니, 도는 바로 하늘의 도요. 덕은 하늘의 덕이라 하였네."

"나에게 신령스러운 부적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모양은 태극으로 두 활을 합쳐 놓은 것이라는데…."

그들이 세상의 큰 이치를 깨닫고 있는 중빈 앞에서 동학사상과 태극을 말하며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해 서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박중빈이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데 저절로 그 뜻이 머릿속에 분명하게 떠오른다. 이상한 일이다. 그는 분명 동학의 경전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암, 그렇지! 옳은 말씀이야."

중빈은 동학도들 앞에서 무릎을 친다. 조상들의 여러 신앙을 합쳐 동학을 세우고 "만백성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한 최제우가 갑자기 선명하게 보인다.

또 애국 애족의 정신으로 자주 독립을 외치며 정읍 고부에서 혁명을 일으킨 전봉준 모습이 확실히 보인 것이다.

큰 깨달음의 길로 들어선 박중빈은 세상 사람들의 말을 두루 귀담아 듣는다.
어느 때는 선비 두 사람이 노루목을 지나다가 쉬면서 주역을 가지고 논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

"대인의 덕과 천지의 덕은 같다. 공자 같은 군자는 천지의 덕을 갖추었는가? 해와 달의 빛으로 어둠을 밝혀주는 것처럼 군자가 해와 달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혀 준단 말인가?"

"군자의 밝은 덕은 사람의 마음 속 까지 비추므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게 아니겠소?"
"그럼 우리나라가 왜놈들에게 먹히고 백성들이 못살게 된 까닭은 무엇이오?"
"성인군자의 발자취가 끊어졌기 때문이죠."
"군자의 밝은 덕이 이 땅에 비추지 못함은 무슨 까닭이오?"
"세상을 원망할 필요는 없단 말이오. 분명 이 어지러울 때 군자가 나오고 성인이 나올 것이요."

중빈은 두 사람이 주역에 대하여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지의 덕과 대인의 덕을 곰곰이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서 그 뜻이 환하게 풀어지는 것이 아닌가?

영광 오지 영촌 마을에서 태어나 글공부 제대로 받지 못하고 20년 동안 간절히 소원하고 정성을 다한 자신의 깨침을 이렇게 밝힌다.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生滅) 없는 도와 인과보응(因果報應)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되어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아! 이 큰 깨달음이여!
이 두렷한 기틀은 천대 만대 우주와 같이 운행 될지어다.

이 큰 깨침은 그를 기쁘게 한다.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우주의 삼라만상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을 볼 때의 기쁨 바로 그 자체가 된다.

중빈의 모습은 나날이 달라진다. 몸의 종기가 말끔히 가시고, 야위었던 얼굴에 살이 올라 큰 키에 우람한 기골이 본래로 돌아선다. 예전과 다른 것은 보름달과 같은 얼굴에 감도는 미소와 두 눈의 광채다.

"어쩌면 저렇게 다르지?"
"누가 아니래, 꼭 부처님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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