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기도가 되어야 위력이 생긴다
오덕훈련원 정인신 교무, '중얼중얼'하는 기도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도

▲ 오덕훈련원 정인신 원장.
태풍 톈무가 남해안에 상륙하던 11일, 잣나무와 휴양림으로 유명한 오덕훈련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9년 째 근무하며 축령산(祝靈山) 아래 기도도량을 아름답게 가꾼 정인신 원장. 그를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편안함을 느낀다. 출가 이후 벌써 예순에 이른 정 원장은 동안의 모습이다.

"출가자에 있어 기도는 밥을 먹어야 건강하듯이 생명의 양식이예요. 기도는 영혼을 맑히고 향기롭게 하며, 마음의 풍요와 여유를 가져다줍니다. 진리 자체가 에너지의 원천이라면 기도는 그 에너지를 끌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법신불과 만나고 소통하는 길이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도는 출가교무의 필수과목이자 신앙인의 기본이며 수행의 기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출가를 했다고, 한 도량에 산다고 금방 부처가 되고 진리의 위력을 얻는 것은 아니라며 정진 적공의 중요성을 말한다.

"자력도 중요하지만 타력의 힘도 그에 못지않아요. 기도의 위력을 얻으려면 참회기도로 시작해 지나온 삶을 반성·성찰하며 지우고 내려놓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합니다."

대종사께서 '위력을 얻으려면 일천정성이 사무쳐야 하고 일백골절이 힘이 쓰여야 한다'고 하신 법문을 예로 들면서 '일상이 기도가 되어야 위력이 생긴다'고 그는 부연한다.

정 원장은 위력 얻는 기도를 위해서는 구하라고 강조한다. "구하면 주신다는 확신과 목적을 향한 간절한 정성, 기도 중에 오는 순역경계를 잘 극복할 때 법신불 사은님은 자신의 삶 속에 은혜가 나타납니다." 그 만큼 일의 성질을 따라 기도의 기간과 정성도 다르다는 얘기다.

"원기87년 오덕훈련원에 부임했을 때는 숙소동 건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집 지을 돈이 하나도 준비가 안된 입장이고 서울교구는 서울원음방송 불사에 힘을 다 쏟아 버린뒤라 손 내밀기가 참 딱한 사정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는 정 원장. 일이 잘 안 풀려 마음이 답답하면 무조건 기도실에 앉아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단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사람을 만나고 있을 때도 오직 오덕훈련원 숙소동 불사에 기도일념이 되다보니 혼자서 훈련원 부지를 둘러보는데 입에 '중얼중얼'하는 기도소리가 내 귀에 들리더라구요. 내 안에 기도의 울림이 충만할 때 어려운 일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기도를 한다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니 몸과 마음이 기도일념으로 가득 찼단다. 그 일 하나에 얼마나 몰입하고 집중하는지, 간절한 정도에 따라 기도의 위력도 달라진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교구에서 교당별로 분담금을 정해 숙소동 불사가 이뤄졌다. 이런 결정을 끌어내기 위한 작업도 쉽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오덕훈련원 본관 신축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허가 취소가 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5,000만원을 가지고 16억 공사를 해냈습니다. 그런데 3년4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교도도 없고 운영위원도 없이 건축을 추진하니 어느 날에는 숨이 가슴 아래로 안 내려가더라구요. 대금 결재를 못하는 상황이다보니 공사가 멈춰지는 것이 다반사였어요. 이때 '이것이 바닥이구나. 바닥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것이야. 이제는 치고 올라갈 시간만 남았어.' 내가 깨어나기 시작하니까 훈련원 불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서울교구와 전국의 교도들이 합력해 이룩한 기적의 불사였다.

문득 정 원장의 기도 생활 이면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기도생활을 일상처럼 하는 데는 다른 내력이 있으리라.

"할머니와 어머니가 11년동안 절에 다니면서 기도로 얻은 딸이 저예요. 집안의 불심이 장해 스님을 초청해 기도하고, 평소에도 천수경 등 기도 분위기가 가득했던 집안에 살다보니 기도가 자연스러워요. 출가 후 첫 부임지가 조실이다 보니 대산종사의 사시정진(새벽·오전·오후·저녁) 기도가 표준이 되었어요. 대산종사가 30대에 양의와 한의가 다 포기했던 투병기에 '다 바치오리다. 큰 힘 주소서'라고 했던 기도, 40대에 '전인류· 전교단·전교도·전생령·유주무주고혼·동지' 등을 나이별로 집중기도 해 큰 힘을 얻으셨고 그것으로 교단을 이끄셨어요."

대산종사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어른의 모습에 감탄한다. 조실 방에 가면 기도해 주는 사람의 명단이 있어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다보니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 정 원장의 증언이다. 60대에 접어들던 그는 이런 스승을 표준으로 기도에 적공한 듯 싶다.

"순간 순간하는 기도가 습관이 되었어요. 즐거운 일을 당할 때에나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 즉석 기도를 통해 '법신불 사은님 감사합니다. 참회합니다'로 바로 바로 기도를 올립니다. 늘 감사의 과실을 나 혼자 받지 않고 곧 바로 사은님께 은혜를 돌립니다. 그렇게 하면 감사할 일이 계속 생깁니다."

오덕훈련원은 11월27일이 되면 3,000일 회향기도를 맞이한다. 이와 함께 훈련원 주변 일체생령을 위한 천도재를 매년 2~3번 49재를 지내며 주위의 기운을 모은다.

"천도재를 훈련원 주변으로 범위를 정한 것은 너무 천도재 내용이 크면 감당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훈련원 주변의 일체생령을 위한 천도재라고 하면 부담감이 덜한 게 사실이잖아요. 이렇게 천도재를 지내면 도량이 청정해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천도재를 지내는 동안 내 자신의 업장이 소멸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심원송(心願頌)의 가사처럼 '내 손길 닿는 곳 내 발길 머무는 곳 내 음성 메아리치는 곳 내 마음 향하는 곳마다 우리 모두 다함께 성불제중 인연이 되어'지는 감응이 옵니다."

정 원장은 주변을 위한 기도가 결국은 자신의 성불제중과 함께 하고 있음을 체험하는 듯하다. 기운이 하나로 통해 있다는 진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덕훈련원의 황토 기도방은 축령산과 서리산 중간에 흐르는 계곡 옆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동네 마을사람들이 예전에 기도를 많이 했던 터이기도 하다.

"백지혈인은 사무여한의 정신입니다. 대종사께서 구인선진에게 '창생을 위해 죽어라'하실 때 구인선진은 생명을 모두 바치신 겁니다. 나를 온전히 던져 버렸을 때 혈인이 나오고 법계의 인증을 받는 것이죠. 이것이 무아 아닙니까."

정 원장은 '생명을 바치라'라는 스승의 명에 생명을 던진 구인선진의 응답은 우리 회상를 지켜주는 생명의 정신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열심히 적공하고 있는 재가의 이야기를 꺼낸다.

"올 여름 오덕에서 강남교당 교도훈련 때 부평교당 김신원 교도를 초청한 일이 있어요. 자신의 공부담을 하면서 '신원이 너 이 회상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으라면 내 놓을 수 있어?' 부인과 2명의 자녀, 부모까지 살아 있는데 바로 '네'라고 대답은 못했지만 며칠 뒤에 진정으로 '네 할 수 있습니다'고 발표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가득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되물었어요. 너 창생을 위해 죽을 수 있느냐고."

재가들이 무섭게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정 원장은 이런 사무여한의 창립정신은 출가 재가교도를 떠나 회상을 성장시키는 근원적인 힘 임을 역설한다.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내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해요. 출가자의 기도는 내 개인의 삶이 목적이 아니라 공인의 삶을 향한 서원기도여야 합니다. 욕심과 형식으로 하는 기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로는 내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정 원장과의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그의 어휘와 음성에서 기도인의 품성과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앙이 몸에 밴 흔적은 숨기려 해도 묻어나는 향기를 어찌할 수 없으리. 기도로 단련된 정 원장의 모습에서 교단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